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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일사일언] 정원 닮은 인생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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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원순 에버랜드 가드너·'나는 가드너입니다' 저자


새롭게 만들 정원의 도면을 그리다 보면 자연스레 내 삶의 계획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된다. 먼저 라인만 표시된 빈 도면을 펼쳐놓고 무얼 어떻게 심을지 고심한다. 키 큰 나무들과 작은 관목들, 그 사이로 숙근초와 그라스류, 구근류와 덩굴식물, 일년생 초화류까지. 심고 싶은 식물들은 많은데 도면 속 정원 크기는 정해져 있다. 이미 많은 시간을 할애해 추려놓은 식물 목록은 아주 길기만 하다.

테마와 계절성, 컬러 콘셉트로 필터링을 하고 나서도 쓰고 싶은 식물의 종류는 너무나 많다. 과감히 버릴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추려 보지만 목록은 쉽게 줄지 않는다. 결국 많은 품종이 더 작은 면적을 할당받게 되면서 도면은 온갖 색상의 씨실과 날실로 엮은 태피스트리처럼 복잡해진다. 거기다가 깨알 같은 글씨로 식물 이름들을 적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물량 계산도 어렵다.

다행인 건 이렇게 복잡하게 설계해도 어떤 통일된 구도나 색감, 패턴을 염두에 두면 결과물은 오히려 더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도면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는 것도 가드너의 실력이다. 만들고자 하는 정원의 목적, 환경과 기후, 토양 조건, 스타일 등 고려할 것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도 적절히 악센트를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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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를 맞아 내 삶을 위한 인생 도면도 다시 한 번 점검해 본다. 혹시 내게 주어진 시간에 비해 너무 많은 일과 버킷 리스트를 계획하고 있진 않은지, 일과 사랑의 균형은 적절한지, 무엇보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지 말이다. 도면만 잘 그린다고 실제 정원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 계획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결국 모든 정원은 가드너의 상상으로부터, 모든 삶은 개개인의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도면 앞에서 새삼 깨닫는다.

[박원순 에버랜드 가드너·'나는 가드너입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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