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영국 법조계도 #미투…여성 변호사 ‘3분의 2’ 성희롱 피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더 타임스’ 비밀유지 계약으로 ‘봉인’돼 온 로펌 성폭력 보도

선임 변호사와 긴 시간 ‘밀착’ 훈련에 잦은 영업 술자리 영향도



한겨레

영국 여성 변호사 3분의 2가 로펌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19일 일간 <더 타임스> 인터넷 기사. 사진출처: <더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영국 정계와 구호단체를 휩쓴 성폭력 고발 ‘#미투 캠페인’의 다음 정착지는 법조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 변호사 세명 중 두명이 로펌에서 성적 괴롭힘(성희롱)을 당했다고 답할 정도로 성폭력이 만연해 있으나, 피해자들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피해 사실을 함구하거나 비밀유지 계약에 서명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받는 관행 탓에 그 동안 ‘봉인’돼 왔다는 조사가 나왔다.

일간 <더 타임스>는 19일 영국 로펌에서 일하는 여성 변호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입수했는데, 이 가운데 3분의 2가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이 입수한 자료는 영국 법률 매체 <리걸 위크>의 지난해 10월 조사 결과인데, 로펌에서 일할 때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한 여성 변호사가 64%에 달했다. 이 가운데 51%는 두번 이상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13%는 한번 경험했다고 답했다. <더 타임스>가 변호사 감시단체인 ‘상담변호사 규제기구’(SRA)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지난 2년간 한달에 한번 꼴인 총 21건의 성희롱 사건이 접수됐다. ‘낮은 신고율’을 감안하면 실제 성희롱은 훨씬 많으리라 추산된다.

<리걸 위크> 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성희롱은 남성 파트너 변호사의 ‘나쁜 손’에 의해 이뤄졌는데, 응답자 가운데 58%가 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부적절한 언어(43%), 부적절한 신체 접촉(35%), 과도하게 성적인 행동(9%)을 경험했다는 여성 변호사도 많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응답자는 “내가 저연차 변호사였을 때 로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나를 더듬었다. 로펌에 알리지 않았는데, 그때 알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최고 등급의 공판변호사인 칙선변호사(queen’s counsel) 앤드류 번스는 “아마도 다음번 ‘고위급 폭로’ 대상은 런던시티의 변호사들이 될 것이다. 젊고 열정적인 시보 및 학생 공판변호사 훈련 때 영향력 있는 선임 변호사들과 장시간 가까이서 늦은 밤까지 일하는 환경은 성희롱의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번스 변호사는 특히 “시보들은 종종 술이 자유롭게 오가는 영업 술자리에 초대된다. 부도덕한 선임 변호사는 시보가 승진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고소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성희롱의 길로 잘못 들어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로펌 내부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데는 이른바 ‘피해자 재갈 조항’으로 불리는 비밀유지 계약의 영향이 컸다. <더 타임스>는 “런던시티에서 젠더 다양성을 홍보하는 한 선도적인 로펌이 성희롱 문제가 제기되자 피해자에게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비밀유지 계약을 맺었다”며 “해당 로펌은 피해자가 상사에 의한 장기간의 성희롱 패턴을 모아놓은 모든 증거를 폐기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마크 스테픈스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모든 의혹들이 잘 봉인되길 바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조항을 작성하며, 자주 성공한다”고 꼬집었다. 스테픈스의 로펌은 ‘#미투 캠페인’ 확산의 계기가 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전직 비서 젤다 퍼킨스를 법률 대리하고 있는데, 퍼킨스는 비밀유지 계약을 깨고 와인스틴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전세계적인 논란을 촉발한 ‘프레지던트 클럽 스캔들’ 이후 비밀유지 조항에 대해 법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잠입 취재로 정·재계 거물급 남성들이 호스티스를 고용한 자선파티에 참석해 환락파티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으나, 성폭력을 당한 호스티스들은 비밀유지 계약에 서명한 상태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