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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돈도 빽도 없는 진짜 광대 “전통 놀이 뮤지컬 만들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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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부’ 연희 감독 문정수씨

무작정 전국 떠돌며 마당극 귀동냥

‘왕의 남자’ 출연, 18대 품바로 활약

중앙일보

남사당놀이 전수자 문정수 연희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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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우리 새가 어디 갔나.” 저잣거리 놀음판에서 새를 찾는 광대에게 다른 광대가 묻는다. “그 새가 뭔 새여?” “그 새가 말이여, 조세(租稅)일세. 조세!”

설 연휴 극장가에 개봉한 사극 영화 ‘흥부’(감독 조근현)의 한 장면이다. 광대들의 풍자적 언어유희와 간드러진 익살이 웃음을 더한다. 이런 극 중 연희 장면을 총지휘한 사람은 문정수(39) 연희감독. ‘18대 품바’로 알려진 그는 “탈춤, 판소리, 연희 전문 배우 등 최고만 모인 20여 명 연희꾼 덕에 족히 1년은 걸릴 연희 준비를 지난해 3~8월 6개월 만에 해냈다”며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창작 연희를 엮어낸 건 ‘흥부’가 처음”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궁중 연희 장면에선 헌종의 아버지 효명세자 꼭두각시 역으로도 등장한다.

대전이 고향인 그는 아버지의 고향 충남 청양 시골을 오가며 자란 덕에 어려서부터 농악이나 상엿소리 등에 익숙했다고 한다. “다섯 살땐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섯 살 꼬맹이가 땅을 치며 곡을 따라 했다더라. 우리네 삶이 녹아난 여러 소리가 자연스레 내 안에 흘러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열여덟 살에 무작정 대전의 작은 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했고, 스무 살에는 전통 연희를 배우러 무작정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는 “돈도 빽도 인맥도 없으니 나는 삶 자체가 그저 ‘무작정’이었다”고 돌이켰다. “배낭 하나 메고 무전여행 식으로 이 지역, 저 지역 풍물꾼들을 귀동냥했다. 민족극패 우금치에는 몇 번을 거절당하면서도 찾아가 마당극의 시대정신을 배웠다. 기차표만 달랑 끊고 제1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간 적도 있다. 축제장에서 설거지 알바로 열흘을 버티며 전국 10여 개 문화재 탈춤 전 과장을 보고, 전용 노트에 다 기록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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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부’에서 『흥부전』에 해학을 불어넣은 연희 장면. [사진 롯데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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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 전수자가 됐고, 오디션을 거쳐 18대 품바로도 뽑혔다. 그는 “뉴욕 공연도 다녀왔지만, 정규수 선배님의 초대 품바와 흡사하단 칭찬이 제일 뿌듯했다”고 했다.

영화는 ‘왕의 남자’(2005)가 시작이다. “조선 팔도 광대가 모여 공연하는 장면에서 사자 탈춤 추는 광대”가 바로 그다. “탈이 벗겨져서 놀란 얼굴이 감사하게도 그 큰 화면에 혼자 2초쯤 나온다”고 했다. 이준익 감독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져 영화 ‘박열’(2017)에도 언론사 주필 역으로 잠깐 등장했다.

지난 연말 가수 김완선의 콘서트 무대에선 각시탈과 흰 한복 차림에 부채를 들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 맞춰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상·디자인·극작·연희 등 다방면 또래 예술가와 뭉친 ‘경복궁 프로젝트’도 있다. 서울 효자동을 아지트 삼아 새로운 형태의 연희를 만들고자 활동 중이다. 그는 “언젠가 전통 연희를 담은 뮤지컬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이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의 원천은 뭘까. “부모님이 일흔이 다 되셨는데 흥이 넘치고 건강하시다. 방직공장,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며 척박한 세월을 견디고도 마음은 광대인 분들이다. 아내의 한결같은 응원도 힘이 된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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