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뉴스&분석] 美, 철강 관세폭탄에 韓 포함 日 제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美, 한국산 철강 관세폭탄 ◆

매일경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이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에 더해 철강 '관세 폭탄'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산 철강 수입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게 이유인데 지난 60여 년간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 경제 논리만 앞세워 지나치게 홀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이 지정한 12개 수입 규제 대상국에 캐나다 독일 일본 대만 등 다른 우방국은 빠진 채 유독 한국만 포함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촉발한 무역전쟁에 애꿎은 한국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수입 안보 영향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53%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입 규제 대상 12개 나라에 한국을 포함했다. 미 상무부는 과도한 철강 수입으로 인한 미국 철강 산업의 쇠퇴에 대해 "미국 경제 약화를 초래해 국가안보를 손상할 위협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모든 국가의 철강 수출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쿼터(할당)를 설정하거나 모든 철강 제품에 일률적으로 24%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한국을 비롯한 브라질 중국 러시아 인도 등 12개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53% 관세를 부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2017년 수준으로 수출을 제한하라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미 상무부는 12개 국가에 대한 선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대미 수출이 많은 국가가 주로 포함됐고,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국가들이 일부 제외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한국산 철강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캐나다는 대미 철강 수출 1위인데도 12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웃인 멕시코와 전통적인 우방인 일본 독일 대만 영국 등도 제외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미국이 안보를 경제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으로 해석하면서 군사동맹 등 전통적인 안보보다 경제적인 측면을 더 중요하게 본 것으로 보인다"며 "대미 수출이 많으면서 중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는 국가들이 수입 규제 대상국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을 몰아내기 위해 수백 %대 관세를 매기면서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이 2011년보다 31%나 줄었다"며 "미국 정부와 업계는 '중국을 몰아냈더니 한국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핵심 동맹국중 韓에만 가혹…中·러 수준으로 '통상 견제'

매일경제

그러나 이 같은 미 상무부 논리는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미 상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미국의 철강 수입 상위 20개국 중 한국산 제품의 수입 증가율(2011년 대비)은 11위에 그친다. 대만의 경우 증가율이 113%로 한국(42%)보다 2배가 높지만 12개 규제 대상국에서 빠졌고, 독일도 40%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역시 규제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이 물러간 자리를 한국이 차지한 게 아니라 브라질(증가율 66%) 터키(146%) 러시아(238%) 등이 가져갔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란 게 국내 철강 업계의 항변이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철강 수입 1·4위 국가지만 반대로 미국산 철강을 많이 수입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 대상국에서 제외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외에도 미국 철강 업체들이 한국 철강 업체가 중국산 강판을 강관으로 가공해 미국에 덤핑 판매한다고 주장한 점도 상무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도 한국이 중국산 철강을 미국에 우회 수출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한국 철강의 대미 수출 중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는 비중은 2016년 기준 전체 수출 물량의 2%에 불과하다"며 "우회 수출이라는 것은 미국 측의 오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적용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에 해가 되는 경우 상무부 조사를 거쳐 대통령이 관세 부과 또는 수입 제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안보 위해 판단 여부가 주관적이어서 1962년 법 제정 후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1979년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와 1982년 리비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 등 두 번뿐이다. 두 사례는 명백한 국가안보 위해 사안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번 철강 사례는 미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아 무역 보복 조치 성격이 강하다.

미국 상무부가 제시한 세 가지 권고안을 받아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알루미늄은 4월 19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판세를 뒤집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반덤핑 관세 등 기존 무역 규제와 달리 232조는 국제기구를 통해 시비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은 가맹국이 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예외 조항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무부 권고를 수용한다면 최대 피해자인 중국이 당장 보복 조치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가 무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정부와 철강 업계는 지난 17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 주재로 긴급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미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시행되기 전 미국 정부를 최대한 설득하고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

참석자들은 미국 정부가 상무부 권고안에 따라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 및 쿼터 등 조치를 할 경우 대미 철강 수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민관이 함께 미국 정부, 의회, 업계 등에 대해 아웃리치(접촉)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시나리오별로 대미 수출 파급효과를 분석한 뒤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인 한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연이은 업종별 수입 규제 조치에 대한 정부와 기업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용어 설명>

▷ 무역확장법 232조 :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1962년 제정된 이후 50여 년 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 수단으로 부활시켰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고재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