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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치적 쌓으려는 트럼프 정략에 부실 통상외교 겹쳐 '무역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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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한국 철강에 '232조 고율관세' 발표]

한국에 대한 통상공세, 비용 적은데 효과는 최대

中 때리려면 韓 때릴 수밖에...美 압박 잇따를듯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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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에 대해선 동맹국이 아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중일을 표적으로 하는 ‘호혜세(reciprocal tax)’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직접 지목하며 내놓은 말이다. 불과 일주일 후 철강 안보영향보고서를 통한 첫 행보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희비는 엇갈렸다. 우리나라는 고율 관세의 표적이 됐지만 일본은 이를 피해간 것이다. 특히 일본을 비롯해 북미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경쟁국인 캐나다와 대만 등도 이를 비켜가면서 우리 철강 업계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18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에 가장 많은 철강제품을 수출한 국가는 캐나다(580만톤)였다. 우리나라는 365만톤으로 브라질(467만톤)에 이어 세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멕시코가 262만톤이었고 일본은 178톤, 대만은 125만톤을 각각 미국에 수출했다. 하지만 주요 수출국 중에서 제재 대상에 포함된 국가는 한국과 브라질·러시아 등 12개국뿐이었다.

각 국가의 희비가 엇갈린 표면적 이유는 철강 분야의 분업구조였다. 미국이 이번 보고서에서 주 표적으로 삼은 중국의 대미 수출물량은 78만톤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 공급과잉을 초래하고 미국 철강 분야의 안보를 뒤흔들고 있는 중국산 철강이 한국 등의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게 미 상무부의 판단. 이번 제재에서 우방국 중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대상 국가에 포함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 철강제품으로 보면 캐나다가 1위이고 우리나라가 3위지만 최종재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가 1위이고 캐나다의 순위는 한참 뒤로 물러선다”며 “또 지난해 중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7,600만톤의 철강제품 가운데 한국으로 수입된 물량만 1,150만톤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이번 제재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을 두고 미국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가 제외된 것도 이 분업구조 영향이 크다. 전체 철강 수출로는 캐나다가 1위, 멕시코가 4위다. 하지만 미국이 이들 국가에서 원재료나 중간재를 들여야 최종재를 가공하는 방식의 공급구조가 짜여 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제재는 미국 입장에서 ‘제 발등 찍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을 주요 표적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외교 철학도 녹아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전반이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구조다. 중국을 때리려면 한국도 때릴 수밖에 없는 상황. 동맹국이라도 이 같은 제재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방침이다.

또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보호무역주의의 제물로 한국만큼 만만한 상대가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큰 힘을 쏟았던 나프타 재협상은 별 소득 없이 사실상 오는 3월에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부여받은 무역촉진권한(TPA)이 3월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 이전 ‘통상 치적’을 쌓기 위한 대상에 사실상 한국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입장에서 ‘화약고’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도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를 향해 통상 공세를 퍼부을 수 있는 지렛대가 차고 넘치는 셈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호혜세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측면이 있지만 국내 러스트벨트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내용”이라며 “미국은 앞으로도 이 같은 창조적인 지렛대들을 계속 내놓으면서 우리 통상당국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많은 것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당국의 안일한 통상외교가 참사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도, 세이프가드 발동에서도 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해왔는데 그런 결과가 지금에서야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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