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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시인의 집]실치의 투명만도 못한 사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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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허영자 시인 '투명에 대하여 외']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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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투명'이라는 관념에 대한 탐구가 대부분이다. 실처럼 몸이 작고 가늘어 실치라고 불리는 바닷고기가 있다. 몸이 투명하여 등뼈나 내장이 다 보인다. 화자는 이 실치를 보면서 부끄럽다고 한다. 실치를 통해 자신을 감추고 감추어 남에게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면서 실치의 투명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투명에 대한 탐구가 실치를 매개로 하여 구체적으로 형상되고 있다.

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투명성에 있어서 실치만 못하다는 비유다. 크고 작은 집단이 갈등으로 소란하고 썩고 어지러운 것은 이런 불투명에서 시작한다.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일 것이다. 압축과 절제된 표현, 명징한 비유가 시창작 방법의 특징인 허영자 시인은 193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1962년 현대문학에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첫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을 내었고, 이번이 11번째 시집이다. 시조집 '소멸의 기쁨'과 동시집 '어머니의 기도'를 내기도 했다.

시집 주제인 투명은 뱀의 허물을 통해서도 형상된다. "나뭇가지에/ 뱀 허물이 걸려 있다// 햇빛 받아/ 아리아리 비단결이다// 맹독도 빠져나갈 때는/ 저리 투명한 껍질을 남기는가."('투명에 대하여 9 - 비단허물' 전문) 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뱀이 벗어놓고 간 투명한 허물을 보았을 것이다. 뱀은 허물을 벗으며 성장을 한다. 한 해에 두세 번 허물을 벗는 뱀도 있다고 한다. 사람도 허물을 벗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

투명한 환경은 사람에게 영적 성장을 가져다준다. 시 '투명에 대하여 7 - 문득 내 곁에'에서 화자는 햇빛이 빛나는 투명한 가을날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지나가는 수녀를 만나고 비구니 스님을 만나면서 "참으로 멀리 계신/ 하느님도 부처님도/ 문득 내 곁에"있다는 것을 느낀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차랑차랑한 햇빛, 하얀 머릿수건, 파르란 까까머리, 여성 성직자들을 동원하여 투명함을 강조한다. 투명함 속에서만 신성이나 영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허영자는 주제에 대한 탐구를 연작형식을 통해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필력을 다른 시집에서도 보여준다. 그는 이 시집보다 다섯 달 전에 서서시집 '마리아 막달라'(서정시학, 2017.8)를 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비천한 여성으로 나중에 예수의 제자가 되어 죄를 뉘우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여인이다. 그러나 이 시집의 서사는 마리아 막달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시가 그렇다.

뛰어내릴 듯

뛰어내릴 듯

강물 속으로

다리 난간을 붙들고 섰던 여자가

문득

돌아섰습니다

뱃속의 아기가

꿈틀하였기 때문입니다

- '마리아 막달라 32-생명' 전문


허영자의 시들을 읽어가다 보면 시의 형식적 전범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시와 같이 모성을 형상한 시는 이번 시집에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별 ‘금성’을 제목으로 한 시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늙은 어머님의/ 등불// 제일 먼저 켜이고/ 제일 밝게 켜이고/ 제일 나중에 꺼진다."('금성' 전문) 밤하늘에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밝고 가장 나중에 지는 별이 금성이다. 이 별은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등불이다.

◇투명에 대하여 외=허영자 지음. 황금알 펴냄. 127쪽/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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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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