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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배우 이주화의 유럽스케치(58)] 음악의 도시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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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비엔나는 오랜 기간 제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켈트족이 정착하며 도시가 건설됐고 15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한다. 정치,경제,과학,문화의 중심지였으며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가 된다. 2차 대전 이후 1954년 독립하며 다시 오스트리의 수도가 된다. 그래서 도나우강 주변에 위치한 비엔나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최고의 고딕양식으로 손꼽히는 슈테판 성당,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별장인 쉔부른 궁전, 사보이 왕가의 벨베데레 궁전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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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는 무엇보다 음악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태어나고 ‘천재’ 모차르트가 왕성하게 활동했다. ‘악성’ 베토벤은 본에서 태어났지만, 생애 대부분을 당시 음악의 중심지인 비엔나에서 보냈다. 그래서 이곳의 거리에는 바람소리에도 음악이 묻어있다. 우리가족은 ‘비엔나의 혼’ 슈테판 성당에서 시작해 성피터 성당을 지나 호프부르크 왕궁까지 걸었다. 주변이 모두 오랜 건물인데, 번화가라서 그런지 상점도 많고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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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30분 쯤 우리는 다시 성피터 성당으로 들어갔다. 이미 30명이 넘는 애슈빌 심포니 합창단이 검은 셔츠를 입고 도열해 있다. 정장 차림의 베토벤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 앞에 앉아 악기를 조율하고 있다. 성당 내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우리는 두 번째 자리에 빈 곳이 보여 그곳에 앉았다. 8시가 되자 지휘자가 등장해 인사를 한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성당 안이 관객으로 꽉 들어차 있다.

지휘자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지휘봉을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몸집이 비대한 백인 여성이 맨 앞자리로 비집고 들어온다. 엉덩이로 털썩 앉으며 나무 의자에서 크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움찔한 지휘자가 곁눈질로 살펴보는 게 내 자리에서 보인다. 콘서트 직전, 가장 앞 열에 앉는 것도 보기 나쁘지만, 소음을 내는 것도 비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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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는 총 3부로 나눠 1시간 2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1부는 조금 산만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긴장을 한 건지, 맨 앞 열로 돌진한 여성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화음과 선율이 모이지 않는 느낌이다.

딸아이는 지루한지 하품을 하고 졸립다는 표정이다. 그러지 마라고 눈치를 주지만, 아이의 감정을 억지로 막을 수 없다. 아이의 손바닥을 악기삼아 바이올린을 켜고 북소리에 맞춰 두드려주니 조금씩 연주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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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휘자가 바뀐 2부는 완전히 달랐다. 성대와 손끝에서 나온 소리들이 살아서 성당 안을 채웠다. 성당 내벽에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완벽하게 하나로 모아진다. 내벽을 장식하고 있는 많은 천사가 함께 소리를 내고, 나팔을 분다. 그림 속 성인도 입을 열어 합창을 하는 것 같다. 돌로 세워진 벽에서 울림이 느껴질 만큼 가슴이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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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본다.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까지 귀 속에서 살아 춤을 춘다. ‘이렇게 감미롭고도 풍성하다니…’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음악이 마그마처럼 솟구친다고 표현하면 너무 과장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눈을 감고 듣는 합창단의 화음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그랬다.

눈을 뜨니 콘서트 직전에 앞자리로 비집고 들어온 그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녀는 2부와 3부가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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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주화는 지난 1년간 잠시 무대를 떠나 유럽을 비롯해 세계각지를 여행했다. 추억의 잔고를 가득채워 돌아온 뒤 최근 <인생통장 여행으로 채우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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