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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왜냐면]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 / 고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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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영남 인제대 법학과 교수

대학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대학 내부에서의 민주주의와 수평적 소통이 거의 사라진 시대에 벌어지는 학문과 고등교육에 대한 가장 잔인한 학살은 국가의 일방적 대학 구조조정과 공교육 포기이다. 이런 흐름의 시작은 대학이나 학생의 수가 너무 많다는 꽤 단순하면서도 널리 형성된 논리이다.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그 근거를 ‘학령인구가 감소하니 당연히 입학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주문에서 찾아왔다. 한국의 대학 자체가 민주적 경영구조 그리고 고등교육재정에서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낮은 출산율 등을 빌미로 대학과 학생의 수를 의도적으로 감축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학 구조조정의 목적은 오로지 고등교육과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음을 기억한다면, 학령인구의 감소는 교육여건의 개선과 맞물려 오히려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설은 왜 일어나는가? 한국 대학의 대부분이 민간의 재정에 의존한 사립대학을 경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은 국가 스스로 대학 설립 준칙주의와 대학 정원 자율화를 앞세워 초래한 파탄을 수술하는 양적 구조조정이지만, 그 본질은 선택과 집중으로 고등교육재정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었다. 효율성 제고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 문제해결의 본질은 누가 고등교육재정을 감당하는지에 달려 있다. 국가 부담 재정과 민간의 합계가 어느 국가의 고등교육재정보다 많은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민간 부담 재정이 워낙 큰 한국에서 그 크기를 국가가 아닌 민간이나 개인이 앞으로도 감당해야 한다면 고등교육의 파탄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의 공교육비 부담이 제법 크지만 국가의 재정부담비율(0.9%)은 민간(1.4%)에 비하여 오히려 낮은데, 오이시디 평균치(국가 1.1%, 민간 0.5%)와 비교해도 민간 부담 비율이 매우 높다. 반면에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 부담은 전체 공교육재정에서 각각 94%, 80%, 83%, 80%나 차지한다. 타당한 기준이나 합리적이고 엄정한 평가 등을 명분으로 국가 부담의 재정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것보다,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고등교육의 재정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립대학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양적 감축이 질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역설, 그리고 민간이나 개인이 국가보다 고등교육재정을 더 부담하여야 하는 비정상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민간에 의한 재정부담은 이제 한계에 봉착하였고 이를 극복하려는 책무는 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발전 가능하고 지역에 필요한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학으로 전환하여 육성’한다는 정책이 지난 대선을 거쳐 현 정부의 핵심적인 고등교육정책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사립대학에 국가 부담의 재정을 적극 투입함으로써 지역별로 ‘공영형 사립대학’이 다수 육성된다면 고등교육과 연구의 공공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시기상조라며 외면하거나 국민혈세이니 예비타당성 등 절차를 따져보며 지체할 사안이 아니다. 고등교육의 생태계를 국민의 이익에 맞게 재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립대의 지배구조에 만연한 사적 기득권을 잠시 내려놓고 국가 역시 공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인식하여 그 의지를 실천한다면 사립대학 역시 교육, 연구 그리고 문화역량의 산실로서 그 공공성과 고유성을 드높이는 역할과 책무를 다할 것이다. 민주시민의 함성과 촛불이 마련한 ‘정의로운 나라’의 희망을 마주하는 가운데 우골탑의 상징인 사립대학의 올바른 정립을 국가와 시민들이 어찌 외면하겠는가. 사립대학은 누가 키울 것인가란 질문을 주저하거나 그 대답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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