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제10대 한국메세나협회장 취임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사옥 집무실에 걸린 장 뒤뷔페의 그림 앞에서 메세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평창동에 사는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74)은 매년 1월 11일 이웃에 사는 원로 화가 20여 명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 고독한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저녁 자리다. 추상화 거장 윤명로 화백이 사회를 보고, 102세 최고령 화가 김병기 선생이 건배사를 한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 김구림, 김봉태, 이종상 등 미술계 원로들이 찾아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최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만난 김 회장은 "1년에 한 번이라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어 두 차례로 늘릴까 한다"며 "김병기 선생은 고령에도 기억력이 좋고 말씀을 잘해 건배사를 10분이나 하신다"고 말했다.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그는 작품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평창동 자택에 100여 점, 여의도 사옥에 100여 점, 한남동 사옥에 100여 점을 설치했다. 여의도 사옥 9~11층 화장실 근처에도 현대 미술 거장 로이 릭턴스타인, 호안 미로, 앤디 워홀, 안젤름 키퍼, 도널드 저드 등의 작품이 걸려 있다. 한남동 사옥 로비에는 한국 추상화 거장 정창섭,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등의 그림으로 작은 미술관을 만들었다.

1970년대부터 미술품을 꾸준히 구입해 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판 적은 없다. 그에게 그림은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애정이고 찬사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행복하다"며 "작품을 살 때부터 온 마음을 다해 보관하고 감상한다"고 말했다.

건축학을 전공해 심미안이 뛰어난 그는 1970년대부터 서울대와 홍익대 미대 졸업전시를 찾아다녔다. 1975년 홍익대 졸업전에서 고영훈의 그림에 반해 하숙집으로 찾아갔다. "어떻게 그렇게 극사실적으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지 놀라웠어요. 다락방에 똘똘 말아 보관한 그림들을 넓은 공간으로 옮겨 펴본 후 몇 점 샀죠. 큰 작품은 걸 데가 없어 숭실대 도서관에 기증했어요. 아버님(고 김형남 일신방직 창업주)이 숭실대 초대 총장과 이사장을 지내셨고 저도 숭실대 이사장을 맡았었죠."

김 회장은 고 작가의 그림을 사면서 "어려울 때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제대 후 작업실이 마땅치 않았던 고 작가를 흔쾌히 도왔고 오늘날 '극사실주의 거장'으로 성장하는 데 발판이 됐다.

그는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않은 현대음악에도 귀를 기울였다. 2007년 몽블랑 예술후원자상 상금 1만5000유로(약 2000만원)를 재독 작곡가 진은숙에게 쾌척했다. "작곡가로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기부했죠. 2007년 독일 바이에른 뮌헨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진은숙 선생이 작곡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초연할 때는 누이들과 보러 갔어요. 한국 작곡가 오페라를 세계적인 극장에서 초연하는 게 얼마나 대단해요."

1989년 일신문화재단을 설립한 그는 2009년 현대음악 전문공연장인 '일신홀'을 짓고, 2011년 일신작곡상을 신설해 현대음악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일신홀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국내 연습실이기도 하며,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후배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 장소로도 활용된다. 일신문화재단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광주비엔날레, 대한민국 건축제 등을 꾸준히 지원했으며 열악한 연극계와 문화유산 보호에도 아낌없이 후원해 왔다.

문화예술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온 김 회장이 지난 8일 제10대 한국메세나협회 신임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2003년부터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을 맡아 왔다.

매일경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협회를 이끌고 싶은지요.

▷우리나라에서 메세나협회(1994년 설립)가 출범한 지 24년 됐어요. 한국메세나협회는 그동안 기업과 문화예술단체의 가교역할을 수행하며, 기업과 예술단체가 윈윈할 수 있도록 많은 사업들을 진행시켜 왔죠. 그간의 활동을 잘 이어가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중소기업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힘써야죠.

―현재 한국메세나협회 회원사는 241곳입니다. 회장님 임기 중에 어느 정도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기존 회원사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활동과 새로운 회원사 발굴이 병행돼야 해요. 메세나 활동을 함께할 회원사를 찾는 것은 의미 있지만, 목표 매출을 달성하듯이 숫자를 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회원사를 늘리기 위해 협회는 어떤 노력을 할 건가요.

▷메세나 활동이 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널리 알리려고 해요. 기업·브랜드 이미지 개선, 임직원 조직문화 개선 등의 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창의적인 경영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기업도 문화적 품격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기 힘든 시대예요.

―메세나가 기업과 사회에 가져다주는 혜택은 무엇인가요.

▷메세나 활동은 사회적 성숙과 치유에 기여하고, 세상의 그늘을 밝혀주는 역할을 해요. 아름다운 음악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죠. 미술이나 음악으로 심리치료도 하지 않나요. 예술활동이 활발한 지역은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과 사회복지 수준이 높아요. 결과적으로 더 낮은 빈곤율에 이르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요.

―메세나 모범으로 꼽을 만한 기업은요.

▷특정 기업을 꼽기보다는, 기업들이 메세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에 주목해야 해요. 많은 기업들이 예술 인재를 발굴하고,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점휴업 상태여서 미술계에 타격이 큽니다.

▷최고경영자가 복귀했으니까 앞으로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쓸 것으로 기대해요. 최근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기업들의 문화예술 투자가 위축되고 있어 안타까워요. 기업들이 메세나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차츰 다시 활기를 띨 겁니다.

―접대비 상한선(5만원)을 정한 '김영란법'이 기업의 문화 접대를 위축시키고 있는데요. 어떤 해결 방안이 필요할까요.

▷예술활동과 관련한 지출은 예외 항목으로 인정해줬으면 해요. 법 취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모든 영역에 일괄 적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문화예술 분야를 직접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이나 민간을 통한 간접 지원도 필요하죠. 문화접대는 기업이 공연 상품을 구매해 예술계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효과가 있어요. 요즘 공연 티켓가격을 고려하면, 5만원은 아쉬움이 큰 금액이지요.

―메세나를 늘리기 위해 어떤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실효성 있는 메세나법을 도입해야 해요. 프랑스에서는 기업이 예술을 지원하는 금액의 60%를 세액공제해 주는 법률을 2003년부터 시행했어요. 그 결과 2004년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였던 문화예술 분야 기부액이 2012년 30억유로(약 4조원)로 3배가량 성장했죠. 국내에서도 2013년 '문화예술 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기업들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세제 혜택 부문이 개정되지는 않았어요. 기업들의 지원금이 제도적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조세감면 정책이 도입되기를 희망합니다.

유능한 예술가 당대엔 인정받기 쉽지 않다
반 고흐도 단 1점 팔아…생존작가 작품 사야


매일경제

김 회장의 집무실 벽은 미국 천재 낙서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의 1984년 작 'TBT(ISBN)'가 차지하고 있다. 가로 310㎝, 세로 203㎝에 이르는 대작이다. 지난해 뉴욕 소더비경매에서 바스키아의 1982년 작 회화 '무제'(183.2×173㎝)가 1억1050만달러(약 1248억원)에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두 배 크기인 'TBT(ISBN)'는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김 회장은 "1991년 바스키아 작품이 굉장히 저평가됐을 때 17만달러(약 1억8000만원)를 주고 구입했다"며 "원래 여의도 사옥 복도에 걸어놨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훼손될까 봐 내 방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사옥 미술관 큐레이터는 김 회장이다. 그가 직접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선정한다. 매년 두 차례 작품을 바꾸는데 16일 설날에 한남동 사옥 로비를 새로 단장할 예정이다.

―여의도와 한남동 사옥을 '미니 미술관'처럼 꾸민 이유는요.

▷미술에 관심이 많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고 나니까 전시 공간이 필요했어요. 원래 건축을 전공해서 사옥을 설계할 때 모든 디테일에 관여했죠. 여의도 사옥 3개층을 터서 아트리움을 만들었고, 한남동 사옥 로비에 전시 공간을 마련했지요.

―주로 생존한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을 구입하시죠.

▷재능 있는 예술가는 시대를 앞서가기 때문에 당대에 인정받기가 쉽지 않아요. 이를 알아보고 창작활동을 지원하게 되면 작가가 살아 있는 동안에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생전에 딱 한 작품밖에 못 팔았고 결국 자살했죠.

―화학 전공을 원하시는 아버님과 타협해 건축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화학을 전공하셨고, 방직회사라서 화학공학과에 가라고 하셨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공대는 가되 전공은 제 마음대로 정하도록 타협했죠. 연세대에서 건축학과를 다니다 뉴욕 프랫인스티튜트로 유학을 갔어요. 처음에 숙제도 알아듣지 못해 고생을 좀 했죠. 거기 수업은 질문이 전부예요. 집을 설계할 때 부엌이나 현관을 왜 그 위치에 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지요. 예술에 관심이 많아 미켈란젤로의 건축 관련 리포트는 A++를 받았죠.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

―섬유산업은 노동집약적 사양산업이라는 편견을 깨고 첨단 생산설비로 일신방직을 성장시켰죠.

▷1983년 광주방적 제2공장 화재로 약 3만추의 시설이 완전 소실됐어요. 그때 새로운 기계를 수입하기 위해 일본,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공장들을 견학다니면서 제대로 방직을 공부했어요. 당시 한국 최초로 스위스와 독일 기계를 들여왔죠. 비쌌지만 자동화설비 덕분에 3년 만에 기계 구입비를 상환하게 됐어요. 우리 회사는 고품질 면사와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사를 중점적으로 생산해 중국의 위협을 받지 않고 오히려 중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일신방직은 지난해 매출액 3400억원을 기록했으며 계열사인 일신창업투자, 의류회사 지오다노,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 신동와인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룹의 미래 비전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요.

▷그룹의 미래는 조카들인 김정수 일신방직 대표이사와 고정석 일신창투 대표이사에게 맡겼습니다.

―계열사 신동와인은 취미로 시작해 성공한 사업이지요. 1년 내내 와인을 마신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와인을 좋아해서 프랑스 '로마네 콩티', 미국 '로버트 몬다비' 등 일류 와이너리를 직접 방문해 독점 수입권을 얻어냈고 지금까지 관계를 잘 이어오고 있어요. 저는 하루에 와인 1~2잔씩 꼭 마시는데 밥맛이 더욱 좋아지죠.

―직원들과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린다고 들었습니다.

▷봄 가을 금요일 오후에 직원들을 데리고 나가요. 회사가 위치한 여의도공원에서 출발해 잠실이나 경기도 미사리까지도 가요. 겨울에는 사내 스키부를 데리고 강원도 대관령에 가곤 하죠.

김영호 회장은…

△1944년 전남 목포 출생 △1963년 서울고 졸업 △1971년 미국 프랫인스티튜트 건축 학사 △1982년 일신방직 대표이사 사장 △1983~1987년 숭실대 재단 이사장 △1995년 대한방직협회장 △1997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이사 △1997~2011년 예술의전당 후원회 부회장 △1998~2005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2001~2005년 현대미술관회 회장 △2002년 일신방직 대표이사 회장 △2003년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2004~2012년 삼성문화재단 이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 △2007년 몽블랑 예술후원자상 △2013년 예술의전당 이사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