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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쾌도난마의 지혜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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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전체를 보는 방법(A Crude Look at the Whole) (존 H. 밀러 지음, 정형채·최화정 옮김, 에이도스 펴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24]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은 전투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철갑을 덧대려고 했다. 전투기 전체에 철갑을 두르면 무거워져서 기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디를 보강할지 결정해야 했다.

공군은 통계에 의존했다. 전투에 참여한 전투기에 뚫린 총알 구멍 개수를 조사해 총알을 가장 많이 맞은 곳에 철갑을 두르려고 한 것이다.

통계연구 그룹 SRG에 소속돼 있던 수학자 아브라함 발드는 이에 반대했다. 발드는 "총알 구멍이 없는 곳을 철갑으로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상으로 총알 구멍이 없는 곳이 전투기 안전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곳을 맞은 전투기는 추락해 아예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철갑으로 보강해야 할 지점은 통계가 보여주지 않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총알 구멍'이라는 부분적 문제에만 집중하면 '비행기 안전'이라는 전체를 보지 못하는 맹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발전의 비결은 분업화에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비교우위를 특화해서 시장을 통해 이를 교환했고 개인 역시 교환가치를 증명해야 생존이 가능해졌다. 분업화는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분업은 더욱 세분화됐다. 이를 통해 인류는 무인 자동차와 인공지능까지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개인 혼자의 힘으로는 작은 나사못 하나 만들 수 없게 됐다. 반면 산업화 이전 사회는 전체의 힘을 모아도 라디오 하나 만들 수 없었지만 개개인은 자기 완결적인 노동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타이가숲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여행하는 인문학자' 공원국은 이를 "진보와 퇴보는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고 표현했다. 그는 "진보는 명시적이고 크지만 부분적이며, 퇴보는 작더라도 전체적이다. 커다란 기술 진보 한 조각을 얻음으로써 육체와 영혼의 모든 영역에서 세세한 퇴보를 대가로 치른다"고 했다.

분업화는 산업 분야에서만 작동한 원칙은 아니었다. 학문 분야에서도 '전문화'의 이름으로 분업화가 진행됐다. 분과학문체계가 자리 잡으면서 전문성이 깊어졌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은 떨어지게 됐다.

학문의 세계에서 '아이작 뉴턴'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칼 마르크스' '애덤 스미스' 같은 '대가'들 시대는 이제 끝나버렸다. 시대가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세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대가'들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교육체계가 이미 그런 '대가'들을 키워낼 수 없는 시스템이 됐다.

현대의 분과학문은 '대가'는 고사하고 균형잡힌 지성인과 지식인을 길러내는 데 실패했고 대신 특별한 능력만 비대칭적으로 웃자란 전문가들만 양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경제적으로 높은 가격이 매겨진 푸아그라만 비정상적으로 키운 거위 신세인지도 모른다.

진보와 퇴보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듯 세분화된 전문성은 또한 위험성을 낳기도 한다. 물리학자 폰 노이만은 1947년에 쓴 '수학자'라는 책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수학 분과가 경험의 원천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구나 '현실'에서 얻은 개념을 간접적인 영감으로만 여기는 2세대, 3세대 수학자들이 나타난다면 수학은 중대한 위험에 시달리게 된다. 달리 말해, 경험의 원천으로부터 대단히 멀어지거나 '추상적' 근친 교배를 지나치게 겪은 수학 주제는 퇴락할 위험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경험의 원천'에서 멀어진 수학자들이 빚은 참사였다. 현실에서 너무도 멀어진 수많은 파생금융상품들은 수학자들의 간접적 영감과 자본의 탐욕 사이 '추상적' 근친교배의 산물이었다. 그러니까 '분업화'돼서 '경험의 원천'에서 멀어진 수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논리구조가 현실에서 어떤 비극을 초래할 줄 몰랐고 또 어떤 비극이 발생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분업화의 한계, 혹은 전문성이 낳은 위험성으로 인해 이제 새로운 과학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 존 H 밀러 교수 생각이자 그가 이 책 '전체를 보는 방법'을 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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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교수는 "기존 과학은 1600년대 후반에 개발된 수학 등을 도구로 사용하는데, 지금까지도 많이 사용하는 이 수학의 각 부분이 과학 분야 경계를 만든다. 반면 새로운 과학은 그 경계를 벗어나, 모델링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하는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연구도구와 연구방법을 끌어안는다. 더 근본적으로 새로운 과학은 사물을 가장 작은 요소로 쪼개서 이해하는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는 'A crude look at the whole'이다. 여기서 'crude look'은 '자세히' 보는 것이 아니라 대충 '쓱' 보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책이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바는 '대충 쓱 전체를 보는 방법'의 중요성인 셈이다.

밀러 교수는 "우리가 정말로 탐구하고 싶은 문제들을 살펴볼 때"에 '전체를 보는 방법'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금융 붕괴, 기후변화, 테러, 전염병, 혁명, 사회적 변화와 같이 전 세계적인 규모의 사회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이 중 어느 하나도 특정 학문 분야에 들어맞지 않는다. 딱 들어맞는 학문 분야가 있다 하더라도 환원주의 접근법으로는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밀러 교수는 상호작용, 피드백, 이질성, 소음, 집단 지성 등 복잡계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 10가지를 통해 '전체'를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준다. 몇 가지 연구 사례를 통해 우리가 '사고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아래는 그 몇 가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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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꿀벌 집단이 벌집 안의 온도를 더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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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이 모여 사는 벌집 안은 늘 34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온도 조절장치는 바로 꿀벌들의 날갯짓이다. 바깥 온도가 내려가서 벌집 안 온도가 34도 아래로 내려가면 일벌들이 서로 밀집해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열을 내는 방식으로 실내 온도를 높인다.

반대로 바깥 온도가 올라가서 벌집 안 온도가 34도보다 상승하면 일벌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날개로 부채질해 공기 흐름을 바꿔 온도를 낮춘다.

그런데 온도 변화의 안정성이 벌집을 구성하는 꿀벌들이 동질적인 집단인가, 이질적인 집단인가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으로 이루어진 벌집의 온도 변화가 안정적일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동일집단의 경우 모든 벌들이 동일 온도에 반응하도록 유전적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동시에 날갯짓을 해서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급격하게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반면 이질적인 벌들로 구성된 벌집의 벌들은 온도에 순차적으로 반응해 온도 변화가 완만하고 안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벌집 내 온도가 더 엄격하게 관리되고 결과적으로 더 성공적으로 알을 키운다고 한다.

흔히 한국 사회를 '냄비 같다'고 한다. 급격하게 끓어올랐다가 급격하게 식어버리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높은 동질성이 안정성의 위험요소인지도 모른다. 다른 집단을 받아들이고,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다른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사회. 꿀벌이 가르치는 지혜다.

GE에서 시작된 '식스시그마'는 한때 가장 성공적인 경영모델이었다. 식스시그마는 제조공정의 품질 불량을 제거하는 품질관리운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GE의 식스시그마 운동은 결국 실패했다. 불량 제품 수를 줄이기 위한 '식스시그마' 시스템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피할 때는 유용하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을 때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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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우리를 정상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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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 교수는 이를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에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봉우리에 올랐는데 사방이 내리막길이면 그곳을 산 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식스시그마 원리에 따르면 그곳에서 멈춰야 한다. '내리막'이라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내리막'이라는 오류를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를 정상으로 이끄는 힘은 '오류를 범할 용기'일 수도 있다.

발리(발리까지 안가더라도 남해)의 다랑이논은 그 모습이 아름답고 경이롭다. 하지만 다랑이논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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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논은 이기심과 공동체에 대한 기여의 황금비율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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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논은 상호협력와 공동체의식이 없으면 농사 자체를 지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다랑이논에서는 농사에 필요한 물이 맨 위쪽 논을 돌고 그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물이 많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논이 물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곳의 수문을 동시에 열어놓으면 된다.

문제는 물이 부족할 때다. 위쪽 논들이 물을 가둬두고 내려주지 않으면 아래 논들 작물은 모두 말라 죽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논을 물로 다 채운 다음에 내려줘도 그 밑의 논은 때를 놓치게 된다.

어느 정도 채우고 내려주느냐가 중요한데 이 시스템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식이다. 자신의 적당한 이기심을 채우면서도 공동체에 기여하는 그 비율이 오랜 경험을 통해 축적이 된 것이다. 또 이기심만 채울 경우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 자신에게도 좋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바로 받게 된다.

다랑이논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은 구조는 직렬적인데 운영은 병렬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오래된 지혜를 우리나라 기업의 하도급구조에 적용하면 원·하도급 간 공생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수십만 개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 등 제조업은 그 생산 체제가 수직적 직렬구조일 수밖에 없지만 운영은 다랑이논처럼 병렬적으로 할 수 있다. 이기심과 공동체 기여의 황금비율을 찾을 수 있다면 말이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 집행자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총체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2차 대전 때 미국 공군이 전투기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전투기에 뚫린 총알 구멍에 철갑을 덧씌우려고 했던 것과 같다.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낮은 출산율'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느끼는 '낮아진 희망의 온도'에 있다. 사회 문제의 해법은 이처럼 '전체를 보는 눈'을 통해 찾으라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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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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