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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주 100시간 일해도 수당 없어 … 직장 갑질이 재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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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갑질 119’ 제보 100일간 5478건

빨간날을 연차로 대체 … 사인 강요

그만두자 무단 퇴사라며 손배 청구

찍힌 사원 괴롭혀 사표 내게 만들고

성희롱 사건, 피해자만 불이익

중앙일보

직장 갑질 삽화


“전 국가기관에서 일합니다. 상사의 인격모독적 폭언에 업무를 못할 지경입니다.”

지난해 11월1일 오후 3시12분,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 들어온 첫 ‘갑질’ 제보였다. 그날부터 지난달 20일까지 1만2287명이 채팅방을 찾았고 14만5767번의 대화가 오갔다. 갑질 제보는 3841건이 들어왔다. e메일과 페이스북 메시지 제보까지 합치면 총 5478건이었다.

이러니 지난 몇 달간 갑질 제보의 홍수 속에서 지내온 직장갑질119 스태프들의 입에서 “한국인의 직장생활은 재난 수준”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게 이상할 리가 없다. ‘갑’들의 횡포에 대한 ‘을’들의 폭로와 제보를 오픈채팅방을 통해 접수한 것은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다. 이 중 하나가 한림대 성심병원 직원들의 직장 내 갑질 고발이다. 병원 직원들은 현재 노동조합을 새로 결성했다.

직장갑질119가 8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이 단체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알바노조 등에 속한 비정규직 운동 단체 활동가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변호사·노무사 241명이 참여했다.

직장갑질119의 법률스태프인 김유경 노무사는 “각양각색의 ‘갑질 사용자’들로 인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분들이 굉장히 많았다. 여성 노동자 중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제보도 꽤 있었다”고 설명했다. 각종 제보들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임금 체불 등 노동법 위반=비중이 제일 컸던 건 ‘임금을 떼였다’(24%)는 제보였다.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한 제보자는 “한 주에 100시간 이상씩도 일하는데 포괄임금제라서 추가 수당을 전혀 못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빨간날을 연차로 대체한다’고 계약서에 사인을 강요당했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입사 후 근로조건이 변경된 계약서를 다시 쓰라고 요구받는 경우도 많았다. 퇴사를 결심한 노동자들에게 ‘무단 퇴사’라며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갑질 사례였다. 김 노무사는 “법의 취약한 점을 틈타 사용자들은 노동법을 위반했고 ‘을’은 부당함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고 말했다.

◆군대식 갑질=지난해 강릉의 한 병원 직원들은 쉬는 날 사장님과 일가 친척에게 보낼 김장 1만 포기를 담갔다. 어떤 직장인은 여행을 떠난 회장님을 대신해 회장님이 키우는 개와 닭에게 사료를 줘야 했다. 사장이 따로 운영하는 고깃집 숯불 피우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을들은 지시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불이익을 당할 것이 두려워 쉽게 저항하지 못했다. 김 노무사는 “신고하거나 문제삼는 순간 ‘쟤는 왜 저렇게 나대?’ ‘너무 유난이네’류의 시선이 두려워 다들 침묵해왔고, 이게 결과적으로는 황당한 갑질 문제를 더 키운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직장내 괴롭힘=제보의 15.1%를 차지했다. 가장 대표 유형은 ‘다양한 이유로 회사에 찍힌 사원을 집요하게 괴롭혀 스스로 그만두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제보자는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뒤 노동청에 신고해 복직할 수 있었지만 이후 조직 내에서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 한 마디도 못하고 퇴근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상사나 동료들의 성희롱 등이 쉽게 이뤄졌지만 그 끝은 늘 인사이동 등 피해자에게만 불이익이 전가됐다.

숙명여대 산학협력단이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전국 직장인 1500명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73.3%가 ‘최근 1년 간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부당한 성과평가▶과도한 업무 배정 ▶트집과 폭언 ▶공개망신 ▶회식강요 등이 꼽혔다. 이런 을들의 제보는 그동안 “직장생활이 원래 이런 거야” “시키는대로 하는 게 편해” “너만 힘드냐” 등의 말에 묻혀온 것들이었다. 이곳 스태프들은 ▶근로계약서·임금명세서·취업규칙 등의 서류 확인하기 ▶노동조합 설립 ▶직장내 노동법 및 노동인권 교육 상시 의무화 등을 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3대 과제로 제시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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