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뱃속에서 숨진 아기 유기는 무혐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형법, 진통이후부터 ‘사람’ 인정



숨진 태아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둔 채 친구를 만나러 간 여성이 법적 처벌을 면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법적 근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 경기 수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아기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보관한 A(19) 씨에 대해 사체유기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검토 중이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지난 2일 자택에서 숨진 여아를 낳았다고 진술했다. 시신 부검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아기는 6∼7개월 된 상태이며, 사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을 밝혔다.

A 씨의 아기가 이미 뱃속에서 숨진 채 태어났기 때문에 사체유기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법상 정상적인 진통을 기준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법적 ‘인간’으로 볼 수 없어 사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국과수의 최종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1차 소견에 따라 무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형법에 따르면 분만 개시의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진통설ㆍ분만개시설)부터 사람으로 인정한다. 체내에 있는 태아는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진통 전 태아가 살해되면 살인죄가 아닌 낙태죄라는 별도의 혐의로 처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법원도 무리한 자연분만을 유도하다 태아를 사산에 이르게 한 조산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진통설 또는 분만개시설에 따라 ‘진통을 동반하면서 분만이 개시된 이후’에야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판례에 따라 조산사에게 ‘사람’을 숨지게 한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민법과는 별개다. 민법은 태아가 산모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시점(전부노출설)부터 인간으로 간주한다. 이 시점에 따라 상속이나 손해배상 청구 등 권리능력이 좌우된다.

이 같이 법마다 사람의 기준이 다른 이유는 법률적 취지와 입법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율다함 신수경 변호사는 “사적인 법률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민법에서 ‘사람’은 의사를 가지고 권리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태아가 모체에서 완전하게 분리되어 나왔을 때 ‘사람’이라고 하는 반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형법에서의 ‘사람’은 민법상의 전부노출된 사람 이전에도 충분히 사회일반이 인정하는 보호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숨진 채 태어난 아이가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사체유기죄 적용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형법 해석에 따라 이미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애도할 만한 객체라면 태아 시신을 사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상 ‘사체’의 명확한 정의는 없는 상태다. 사산된 태아를 사체로 볼 것인지 여부에 관한 판례도 없다.

한 익명의 변호사는 “학설적으로 사람의 형체를 갖추어 종교적 기념, 숭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 즉 애도할 만한 객체라면, 이를 사체의 범위에 포함시켜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단순히 사산됐다는 이유로 사체유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의 경우 사산된 태아를 사체로 보게 되면 A 씨를 사체유기죄의 ‘미수범’으로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