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집권하니 개헌 딴소리 민주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사진 오른쪽)가 지난 2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개헌안 마련에 보다 속도 내줄 것을 각 당에 촉구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권 여당이 개헌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런데 반만 정리했다.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권력구조 개편과 이에 맞물린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 당론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권력구조 개편은 이번 개헌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 언론은 권력구조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속내가 ‘대통령 4년 중임제’ 쪽에 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더불어민주당의 ‘1호 당원’인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자신은 4년 중임제 개헌을 선호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여당 내 다수 의원 역시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며, 아마도 그쪽으로 결론 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정확한 보도가 아니다. 2016년 12월 29일에 발표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권력구조 개편 선호도 조사를 보면, 민주당 의원의 33.3%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있고, 22.2%가 의원내각제, 그리고 13.7%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당시는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기 이전이었다는 시기적 특성을 감안해야 하는데, 어쨌든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35.9%가 이원집정부제든 아니면 의원내각제든 권력 분산형 권력구조를 선호했고 반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의원은 33.3%에 그쳤다. 민주당이 집권한 지금, 다수 의원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면 이는 ‘여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차원에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솔직한 속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앞으로 여야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언론 보도대로 여당이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면 그 이유를 따져야 한다. 문제 제기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대통령제는 필연적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권력구조다. 하지만 여당의 말은 다르다. 누가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논리마저 나온다. 한마디로 사람에 따라 제도 운영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논리대로라면 여태 우리 국민들은 한결같이 대통령을 잘못 뽑은 셈이 된다.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기가 없었다. 두 번째 의문은 사람에 따라 제왕적 대통령이 아닐 수 있다면, 역으로 다음번에는 제왕적으로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런 식의 논리는 상당히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수준에 대한 평가적 요소마저 담고 있는 매우 위험한 논리다. 또 정치를 시스템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게끔 만드는 것이어서 정치 발전에 긍정적이지 않다.

4년 중임제를 주장하는 측은 레임덕이 늦게 올 것이라는 점과 대통령이 4년 중임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을 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여기에도 동의할 수 없다.

레임덕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레임덕이 점점 빨리 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요새 보면 대략 임기 3년 차 중반부터는 레임덕이 오는 것 같다. 4년 중임제를 하면 레임덕을 늦출 수 있을까? 물론 늦출 수는 있다. 레임덕이 오는 시기를 3년 차 중반에서 6년 차 정도로 늦추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장담은 하지 못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한다 하더라도 단임에서 끝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레임덕은 집권 2년 차에도 올 수 있다. 한마디로 4년 중임제를 해야 레임덕을 늦출 수 있다는 논리는 특정인이 8년을 집권해야 한다는 전제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물론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나 카터 대통령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재임에 성공했다. 미국의 사례만 놓고 보면, 한번 권력을 잡으면 대략 8년 정도는 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이 미국과 같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문화와 환경 그리고 국민들의 사고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4년 중임제라 하더라도 8년을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4년 중임제가 좋다는 논리를 생각해보자. 이 또한 한 번 대통령이 되면 두 번은 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누가 이를 담보할 수 있는가. 역으로 재선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일’을 하는 데 있어 현행 5년 단임제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중임제를 할 경우, 첫 번 임기 때는 ‘진짜 일’을 하려 하기보다 재선을 위한 인기영합주의로 나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가 좋다는 주장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이와 관련 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현시대가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지도자의 효율적 일 추진’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부터 필요하다. 산업화 시대에서는 리더가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것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런 산업화 시대의 ‘미담’이 통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이 두드러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효율적인 제도가 아니다. 반대하는 측이 있다면 비록 소수라도 설득하고 양보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효율적’이지 못한 과정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면 그것은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당연히 이런 민주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뿐인가. 국가 지도자 행위의 효율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민주성이 떨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의 설득력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4년 중임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국민들이 4년 중임제를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근거는 있다. 세계일보와 전국자치분권개헌추진본부,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지난 1월 26일 실시해 31일 발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100% RDD 휴대전화 조사 방식으로 했으며, 95% 신뢰 수준에서 허용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59.5%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하고 이원집정부제는 12.4%가, 의원내각제는 8.2%가 각각 선호하며,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16.4%로 집계됐다. 이에 따르면 국민의 76.3%가 어떤 형태든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국민이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나타났던 현상이다. 동시에 우리 국민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제를 하면서 어떻게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잘 읽혀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이 대통령제를 고수하려는 것은 어쩌면 다른 권력구조가 생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원집정부제 같은 용어는 정말 낯설다. 그리고 일반인은 대통령이 있으면 대통령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도 대통령이 있고 오스트리아도 직선 대통령이 있으며 이탈리아도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모두 의원내각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있다고 대통령제는 아닌데 우리 국민은 이런 것을 잘 모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다양한 권력구조에 대해 국민이 잘 알 수 있게끔 소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당이나 야당이 자기들끼리 당론을 정하고 이를 홍보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정당 중 이런 과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정당은 없다. 이런 걸 보면 모처럼의 개헌의 기회를 아직도 당리당략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정당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있어야 존재하고, 국가의 미래가 밝아야 생명이 길어진다. 모처럼 주어진 개헌의 기회를 최대한 객관적 시각으로, 그리고 공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시간이 얼마 없지만 지금이라도 여야가 이런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5호·설합본호 (2018.02.07~2018.02.2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