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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민주주의 기폭제? 극단주의 아지트? 텔레그램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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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도네시아 한 사용자가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모습./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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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96] 통신 보안을 내세운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의 양면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위의 '연락책'으로서 전 세계에 민주주의를 심기도 하지만 테러에도 악용돼 '극단주의 아지트'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31일 이란 정부는 반(反)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자 텔레그램을 차단했다. 텔레그램이 시위를 조직하고 각 지역의 시위 상황을 전하는 통로로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란에서는 집회를 엄격히 통제하는데 텔레그램에 힘입어 시위가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로 커졌다. 당시 모하마드 자바드 어자리자흐로미 이란 정보통신부 장관은 "텔레그램의 반혁명적 채널이 사회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텔레그램 이용자는 인구 절반인 4000만명에 달한다.

텔레그램이 비밀통신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유는 철통 같은 보안 덕분이다. 비밀대화 기능을 지원하고 상대방과 대화가 끝나면 자동으로 메시지가 삭제된다. 또 서버가 독일에 있어 도·감청이 불가능하며, 스마트폰으로 전달되는 대화기록은 복사가 불가능해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다. 전 세계적으로 10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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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크 주커버그'이자 텔레그램 CEO인 파벨 두로프./사진=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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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은 태생부터 다른 메신저와 차별된다. 2013년 혁신의 '불모지'인 러시아에서 당국의 사이버 검열을 피하기 위해 탄생했다. 2011년 총선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반대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러시아 최대 SNS인 브콘탁테 본사를 압수수색하자, 이에 반발한 브콘탁테 개발자 파벨 두로프(33)가 독일로 건너가 텔레그램을 출시했다. 태생부터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안 목적의 메신저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2016년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대한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당시 '사이버 망명지'로도 주목받았다. 박근혜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돌면서 국민들이 텔레그램으로 몰려간 것이다. 당시 줄곧 100위권을 맴돌던 텔레그램은 국내 애플 앱스토어 무료 카테고리 다운로드 순위에서 단숨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두로프 텔레그램 개발자는 이와 관련해 "한국의 '테러방지법'을 알고 있다"며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브러더(Big Brother)'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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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서는 메세지 자동 삭제를 설정할 수 있다./사진=텔레그램 홈페이지


하지만 태생적인 '폐쇄성' 때문에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테러 단체들이 텔레그램을 범죄 모의 창구로 악용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남성 9명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됐다. 앞서 지난해 6월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살폭탄 테러에 텔레그램이 사용됐다고 밝혀진 바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텔레그램을 통해 테러 종용 음성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작전세력들의 '펌핑(pumping)' 창구로도 이용되고 있다. 국내에만 수십 개의 '펌핑방'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상당수가 금융당국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텔레그램에 개설됐다. 펌핑이란 시세를 퍼올려 개미들이 추종매수를 하게끔 한 다음 가격이 확 올라가면 매수한 물량을 매도해 이익을 취하는 행위다. 가상화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카오톡은 기록이 남아 불안한데, 텔레그램은 보안이 철저해 세력들이 마음 놓고 시세를 조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텔레그램은 암호화 메신저를 넘어 암호화폐 최강자도 노리고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조만간 'TON'(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이라 불리는 3세대 블록체인을 선보이고, 독자적인 가상화폐도 발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텔레그램은 이르면 오는 3월 역대 최대 규모의 가상화폐공개(ICO)를 추진한다.

10억명의 '비밀' 사용자를 확보한 텔레그램이 자체 가상화폐를 도입할 경우 가상화폐 시장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몰고올 전망이다. 테크크런치는 "완전히 새로운 블록체인을 개발하려는 텔레그램의 아이디어는 가상화폐의 주류 금융시장 진입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텔레그램을 다른 가상화폐의 킹메이커로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의명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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