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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르포]활짝 열리거나, 꽁꽁 잠기거나…방화문 관리 여전히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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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본 화재 참사 현장

동아일보

활짝 열려있는 방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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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는 병원 건물 1층에 방화문이 제대로 설치돼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경찰은 29일 “1층에서 차단이 안 돼 열기와 연기가 위층으로 올라갔다”며 “당시 엄청난 열기 탓에 위층 방화문 일부가 찌그러졌고 그 틈으로 유독가스가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방화문은 열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인명을 구하는 ‘생명의 문’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날 동아일보 취재팀이 과거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로 대규모 사상자를 낸 수도권 3곳을 점검한 결과 방화문 관리가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6층에 있는 영화관. 매표소 맞은편 비상구 표시등 아래 철문 두 짝은 90도 열린 채 양쪽 벽에 거의 닿아있었다. 영화관에 온 사람들은 야외 공원으로 가기 위해 열린 문 사이를 수시로 오갔다. 이 문은 항상 닫혀야 있어야 되는 방화문이다. 2014년 5월 26일 터미널에 불이 났을 때 이 문 사이로 검은 연기가 퍼져 올라갔다. 당시 터미널 건물에 있던 사람 9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참사의 교훈이 다시 잊혀진 것이다.

동아일보

방화문 아예 설치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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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경기 의정부시 한 아파트 화재로 4명이 숨졌다. 이 화재로 발생한 유독가스가 바로 옆 ‘쌍둥이 건물’인 A 아파트까지 번져 추가 부상자가 속출했다. 29일 취재팀이 A아파트를 찾았을 때 1층에 방화문은 아예 없었다. 연기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복도식과 달리 계단식 아파트는 방화문을 설치해야 한다. 화재 시 방화문을 통해 연기 유입을 막아야 계단을 통한 대피가 가능하다. 주민 서모 씨(25·여)는 “불이 났던 건물이라 해서 늘 걱정이 많이 된다. 사고 이후에도 방화문을 닫고 다녀야 한다는 공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밀양 세종병원과 비슷한 규모인 5층 건물의 서울 강남구 한 빌딩은 2층을 제외하고 모든 방화문이 열려 있었다. 방화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무실들이 있는 복도가 나온다. 방화문이 열린 채 불이 나면 유독가스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3년 11월 서울 송파구의 46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났을 때 한 명의 인명피해도 생기지 않은 것은 방화문 덕분이다. 피난계단과 연결된 모든 층의 방화문이 닫혀있어 주민 140명이 연기를 거의 들이마시지 않고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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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벌어져 연기차단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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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한 유독가스는 작은 문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안에 있는 생명을 위협한다. 이 때문에 방화문과 문틀 사이에 틈이 없도록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고양종합터미널 각층 방화문을 확인한 결과 아귀가 맞지 않아 문틈이 벌어진 곳이 적지 않았다. 건물 1층 주차장으로 통하는 방화문은 2㎝ 가량 벌어져 있었다. 2층 방화문도 마찬가지였다.

의정부 A 아파트 각층마다 방화문이 있었지만 자동개폐장치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번 문을 열면 다시 닫히지 않는 구조였다. 방화문은 항상 닫아놓고 누군가 열면 자동으로 닫히도록 설치돼야 한다. 고양종합터미널 방화문은 자동개폐장치가 달려있긴 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부 방화문은 다시 닫히는 데 2분 가까이 걸렸다. 터미널 관계자는 “문이 닫히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 문 안팎 온도차로 생기는 풍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계속 보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들은 안전을 위해 모든 방화문은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용자들이 채광, 환기, 열고 닫아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열고 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동개폐 장치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고양=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의정부=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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