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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밀양 참사]느슨한 소방법, ‘중소 다중시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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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병원 무단 개조 탕비실 불…스프링클러 ‘사각’·배연창 불량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법 개정…요양병원은 설치 의무화 ‘뒷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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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이튿날인 지난 27일 밤 대구의 신라병원에서도 불이 나 환자 38명이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신속한 진압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 병원 역시 밀양 세종병원처럼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번 밀양 세종병원과 지난해 말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대구 신라병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밀양과 제천 화재는 모두 단시간에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결국 대규모 인명피해로 연결됐다. 제천 스포츠센터는 스프링클러와 배연창이 작동하지 않았고, 세종병원에는 이런 설비가 아예 없었다. 화재 발생 시 대피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를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는 중소 건축물의 불법 증축이나 구조 변경도 빈번하지만 이에 대한 규제나 점검은 허술하기만 하다. 밀양 세종병원과 대구 신라병원의 발화 지점은 화재에 취약하게 무단 구조 변경된 탕비실로 확인됐지만 이에 대한 행정조치는 없었다. 제천 스포츠센터 역시 불법 건축물이 화를 키웠다.

중소 다중이용시설의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방재 규정이 촘촘하지 못한 탓에 불이 나기만 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화재로 노인 21명이 사망한 2015년 전남 장성 효실천나눔사랑 요양병원 사건 이후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을 강화했다. 하지만 세종병원과 같은 중소 병원은 설치 의무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나마 요양병원의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도 뒷북 행정이었다. 2010년 11월12일 스프링클러가 없는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원에서 불이 나 노인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정부는 소방법 시행령을 개정해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노인·장애인 요양시설 등은 건물 면적에 상관없이 간이 스프링클러 등 소방 설비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요양병원은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결국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21명의 사망자가 나온 뒤에야 요양병원의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것이다.

요양병원의 스프링클러 설치는 오는 6월30일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밀양 세종병원과 붙어 있는 요양병원은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전국의 스프링클러 설치 소급 대상인 요양병원은 1358곳이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설치 대상의 60%에 해당하는 816곳이 설치를 완료했고, 아직까지 설치가 안된 곳은 542곳이다.

189명의 사상자가 나온 밀양 세종병원 역시 2016년 시행령 개정 당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건축물로 정부 대책이 나오더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스프링클러 없는 중소 병원은 정부가 정확한 수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전국에 산재해 있다.

밀양과 제천의 화재 참사는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밖으로 빠지지 않고 계속 안에 머물게 되면서 인명피해를 키웠다. 화재 초기에 1차 소방수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 못지않게 유독가스를 신속하게 외부로 유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밀양 세종병원에는 화재 시 유독가스를 줄이는 설비들이 구비돼 있지 않았다. 현행 건축법과 소방시설법은 6층 이상의 건물이나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인 경우에만 배연·제연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양병원 건물이 6층 이상이라 할지라도 배연설비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는 게 현행법의 허점으로 꼽힌다.

소방법상 방염처리 의무 대상에서도 세종병원과 같은 일반병원은 비켜나 있다. 현행법상 다중이용업소의 커튼과 카펫 등 불이 붙을 만한 곳엔 방염처리가 의무적으로 규정돼 있다. 다중이용업소 중에서도 화재가 자주 발생했던 노래방이나 유흥업소 등에 맞춰 법이 강화된 덕이다. 그러나 일반병원의 경우 거즈부터 시트, 침대 매트리스 등 가연성 소재들이 많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규제를 받지 않는다.

국토교통부는 5명이 사망하고 125명이 부상한 경기 의정부 화재 이후인 2015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6층 이상 건물에 불연성 외장재를 써야 한다는 규제를 만들었다. 이전에는 30층 이상 건물에만 적용됐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건물에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 세종병원 역시 1992년 지상 5층 규모로 지은 건물이라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제천 스포츠센터 역시 개정령이 시행되기 5개월 전 건축허가를 신청하면서 관련 조항을 피해 갔다.

<이명희·고영득 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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