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6 (일)

[기고]제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명제하에 연일 국가 성장전략의 대상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3D프린트, 드론 등이 화두가 되고 있다. 아울러 혁명적 규제 혁신의 차원에서 포괄적 네거티브제(사전허용·사후규제)와 규제샌드박스제(규제 면제·유예)의 도입이 매우 과감하게 강구되고 있다. 독일이 2011년부터 제4차 산업혁명의 오리지널 버전인 ‘산업 4.0(Industrie 4.0)’을 기치로 과감한 하이테크 전략을 모색하여 그것을 국가적으로 실천해 온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경우 지난 10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빨리 메우고, 앞서가는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마음이 급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늘 국정과제를 내세워 정책드라이브가 행해지기에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모든 정부에서 집권 초기에 성장의 먹거리를 육성하는 차원에서 신산업과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규제개혁을 의욕적으로 강구하였지만, 공감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허한 슬로건만 남곤 하였다.

경향신문

역사는 축적의 과정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채 급격한 도약을 강구하면 당연히 실패한다. 국가와 사회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이전시대에 갖추지 못한 기본의 부재가 개혁을 가로막는 암초가 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앞서가는 국가들이 이미 갖춘 법제도적 기반을 제대로 마련하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 1976년에 제정한 행정기본법인 행정절차법을 통해 행정작용의 메커니즘 전반을 체계화한 것을 바탕으로, 부단히 행정의 간소화와 규제완화와 같은 시대적 요청을 과감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행정처분의 완전자동화시스템을 규율한 행정절차법 규정이 지난해 1월1일부터 통용됨으로써, 행정작용의 패러다임이 교체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현대화된 법제도를 바탕으로 독일은 통일의 효과를 극대화시켰고 나아가 법공동체인 유럽연합의 법질서를 선도하고 있다.

전체 국가시스템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특정 파트만을 대상으로 개혁을 강구해서는 의도하는 개혁프로그램을 성공시킬 수 없다. 법제도와 같은 시스템의 경우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특히 그렇다. 우리는 1960년대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진 공공법제의 프레임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이미 도처에서 심각한 기능부전이 드러나고 있다. 행정작용의 기본 매뉴얼에 해당하는 행정기본법이 없었으므로 규제개혁이 항상 실패로 끝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법질서가 제4차 산업혁명에서의 국가경쟁력을 국가 경제규모(11위)에 맞지 않게 결정적으로 저하시키는 것(25위) 역시 지극히 자연스럽다.

국소적인 개혁프로그램만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제4차 산업혁명을 국가의 전체 시스템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전하면 할수록, 산업화시대의 프레임과의 부조화는 더욱더 두드러지고, 그로 인해 혁신의 지체 역시 더욱더 도드라진다.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전시대적 법제도는 또 다른 적폐이다. 1960년대 산업화시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공공법제를 시대에 맞게 발본적으로 민주화, 현대화하지 않고서는 제4차 산업혁명은 물론, 규제개혁도 제대로 완수할 수 없다. 그동안 소중한 시간을 너무나 많이 낭비하였다. 행정작용의 기본 매뉴얼인 행정기본법의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김중권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