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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방남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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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일정으로 남한을 방문했던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사전점검단이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장 등을 살핀 다음 22일 밤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남한에 머무른 시간은 모두 36시간 51분이었다. 이 시간동안 남한 사회는 이들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고, 북한도 남한의 반응들을 두고 일부 강하게 반발했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하순까지 북한 선수단, 대표단과 응원단, 예술단, 태권도 시범단 등이 줄줄이 남한을 찾는다. 그 때마다 남북한은 사전점검단 방남을 둘러싸고 표출된 신경전, 깊은 관심과 환대, 비판과 논쟁 등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사이 불신, 그리고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내부 시각차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간 접촉과 교류가 대거 진행된 이후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접근하지 못한다면 남북한 사이 불신과 남한 내부 시각차가 되레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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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격적인 파견 중지와 파견 통보

북한은 당초 예술단 파견을 위한 사전점검단을 지난 20일 파견하겠다고 통보했다. 남측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점검단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파견 전날인 19일 밤 10시쯤 판문점 연락채널로 “사전점검단의 남측 파견을 중지한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점검단을 20일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파견 중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랬던 북한은 다음날인 20일 오후6시 사전점검단을 21일 파견하겠다면서 일정은 이미 협의한대로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에도 파견이 하루 늦춰진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정부는 북한 제안을 수락했다.

북한이 이같이 전격적으로 파견 중지와 파견을 통보하면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남한 내부에선 여러 해석과 비판이 나왔다. 북한이 남한을 길들이기 위해 일정을 고의로 변경했다는 분석, 스위스 로잔에서 20일(현지시간)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의에서 북한 선수단 파견 규모가 결정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하루 늦췄다는 분석, 단순히 실무적 이유로 늦어졌다는 분석 등이었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에서는 이같은 북한 행태에 대해 정부가 이유조자 묻지 못하고 처음부터 끌려다닌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제는 북한이 실제로 남한 정부를 길들이기 위해서 그랬건, 실무적인 이유 때문에 그랬건 이같은 일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한 사이 신뢰가 낮은 상황에서 북한의 이같은 행태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이러한 것이 재발되지 않도록 북측과 계속 협의해 나가고 필요하다면 거기에 관련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북한에 새 지도자가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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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전점검단이 21일 오전 9시17분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를 출발해 자유로를 타고 이동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외신의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관심의 초점은 단연 사전점검단을 이끄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이었다. 남한 언론은 몇년전 ‘북한판 걸그룹’이라는 모란봉악단을 이끄는 현 단장 신상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대거 내보냈고, 그가 총살됐다는 오보까지 낸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방송 중계 카메라 앵글은 항상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였고, 그녀의 외모와 표정, 패션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사들을 쏟아냈다. 남한 언론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파견된 북한 응원단에 ‘미녀응원단’, ‘미녀군단’이라고 부른 바 있다. 현 단장에 대해 남한 언론이 쏟이붓는 관심을 보면서 외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에 새 지도자가 탄생했나?’라고 꼬집기도 했다.

정부 당국이 북한 사전점검단을 근접취재하는 언론사 풀 취재단 활동을 제한하면서 마찰도 빚어졌다. 현장에 있던 당국자는 현 단장의 방남 소감을 물으려는 풀 기자를 밀어내면서 “불편해하신다. 질문 자꾸 하지 말아라”라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북한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등이 남한 땅을 밟을 때 반복되거나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길게 보면 보수정권 동안 남북한 왕래가 줄어들었고, 가깝게는 지난 2년간 남북한 왕래는커녕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돼 남북한 접촉이 끊긴 상태였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호기심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종합편성채널 등이 탈북여성들이 등장시켜 북한 사람들과 북한에서의 생활 등을 화제로 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 과잉의전 VS.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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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점검단에 대한 의전을 둘러싼 논란 역시 반복될 소지가 크다. 남북은 점검단·선발대 등 실무적인 준비를 위해 상대 지역을 방문하는 인원뿐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한을 방문할 대표단·응원단·예술단 등이 체류하는데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방남하는 북한 인사들 체류비용은 남측이, 방북하는 남측 인사들 체류비용은 북측이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 관례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핵·미사일 개발로 인해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뿐 아니라 남한 정부로부터도 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한 ‘대접’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북한 사전점검단은 고급호텔에 투숙하고 식사도 호텔에서 했다. 이들의 체류비용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된다.

이에 대해 실무자급 점검단에 대해 너무 과한 대접을 한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호텔 투숙과 호텔 식사는 경호 문제 때문에라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과거 전례에 비춰도 과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에서 ‘본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대거 방남하면 이들에 대한 대접 수준이 적절한가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재연될 것이다.

■ 인공기 소각과 북한의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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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은 행동으로 이를 표현했다. 보수단체 소속 시민들이 북한 점검단이 22일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서울역 광장에서 북한 인공기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사진을 불태우는 기습집회를 연 것이다. 이들은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북핵을 기정사실화하는 사실상 김정은의 평양올림픽으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체성이며 상징인 태극기를 없애고, 국적 불명 한반도기를 등장시키고, 북한 응원단과 북한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을 한다는 것은 강원도민과 평창주민의 땀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인공기 소각과 김 위원장 사진 소각은 북한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아니다 다를까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3일 대변인 담화에서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존엄과 상징을 모독한 보수 악당들의 극악무도한 망동과 이를 묵인한 남조선 당국의 그릇된 처사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와 관련한 차후 행동 조치도 심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남조선 당국은 이번 정치적 도발에 대해 온 민족 앞에 사죄하여야 하며 범죄에 가담한 자들을 엄벌에 처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철저히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북한 선수단이나 대표단·응원단·예술단이 방남했을 때 유사한 사례가 벌어지면 북한은 더 크게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로선 보수단체들의 인공기 및 김 위원장 사진 소각 퍼포먼스 자체를 원천 금지할 수도, 북한이 요구한 것처럼 사죄를 할 수도 없다.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선수단과 대표단·응원단·예술단이 오면 이들 주변엔 살얼음판 같은 긴장 상태가 조성될 수 밖에 없다. 통일부 당국자는 23일 보수단체의 인공기 소각에 대해 “정부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상호존중의 정신에 입각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나가야겠다는 입장”이라며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북한 참가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차원에서 원만하게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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