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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빨간 판사? 까만 판사?…양승태 대법, 색깔로 법관 성향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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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양승태 대법, 판사 사찰 파문

법원행정처 전방위적 행정권 남용



한겨레

양승태 대법원장이 2016년 9월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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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판사·모임 와해 전략
사법행정위 구성방식 논란 일자
강성판사 후순위 추천 등 ‘영향력’
‘우리법 회원’ 단독판사회의 출마에
경쟁자 지원공약 등 당선 저지 계획
‘인권법연구회’ 견제 대응책 보고도


법관 온라인모임에 침투 사찰
‘이판사판’ 다음카페 접근 정보수집
‘자발적 폐쇄 유도’ 등 대응책 마련


법원행정처 ‘부적절성’ 인지
‘상고법원’ 반대 목소리 막기 총력
“드러나면 큰 반발” 보안유지 강조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22일 발표한 조사 결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청와대와 은밀한 거래’를 주고받았을 뿐 아니라, 행정처 주도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사찰해 대응책까지 마련한 사실이 드러났다. 진보·보수 성향과 장애나 출산 경험 유무 등을 기준으로 법관을 임의적으로 분류하는가 하면, 법관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독려하려고 만들어진 위원회의 구성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정 연구회 활동을 막기 위해 단기·중기 대응 방안을 마련했고, 이중 일부는 실행되기도 했다.

■ 판사 성향 따라 ‘적색’·‘청색’·‘흑색’ 분류 행정처는 대법원장 및 행정처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모임에 대해서는 와해 전략을 구사하고, 행정처가 추진한 기구에 ‘문제 판사’를 심는 방식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는 치밀한 ‘투트랙’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초 사법행정위원회(사행위)의 구성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자, 행정처는 비판 법관을 ‘핵심그룹’(우리법연구회 전·현 회원), ‘주변그룹’(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분류해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사행위는 일선 판사가 사법행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어진 기구였지만, 위원을 고등법원장이 추천하고 행정처가 위촉하도록 해 비판받는 상황이었다.

그해 3월28일 행정처는 고등법원장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법관들의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했다. ‘우리법·인권법연구회와 유대 관계’, ‘법관사회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반드시 포함’(1순위)은 빨간색, ‘유력한 후보군으로 고려’(2순위)는 파란색, 3순위는 검은색으로 분류해 추천 수위를 달리했다. ㄱ판사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밝고 합리적, 시각장애인으로서 상징성” 때문에, ㄴ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핵심으로, 진보 성향 법관에게 강력한 영향력 보유, 전략적 사고에 능하나 주장이 강경한 편은 아니”라는 이유로 1순위로 추천됐다. 우리법연구회 소속 몇몇 판사는 “강성”이라는 이유로 3순위로 밀렸고, 행정처 심의관 등에 대해서는 “핵심 그룹에게 공격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라며 소극적인 추천 방침을 세웠다.

2016년 3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경선에 출마한 ㄷ판사에 대해선 “우리법 회원”, “행정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가능성” 등 이유로 당선을 저지하고 다른 판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선거공약 발굴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까지 마련하기도 했다.

행정처에 비판적인 인권법연구회가 2016년 말 ‘공동학술대회’ 개최 논의에 들어가자 행정처는 중?단기로 나눠 치밀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중기 방안의 하나인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실제 실행되기도 했다. 예산 삭감 및 다른 연구회 행사 개최로 연구회를 견제하는 방안 등도 논의됐다.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 지시로 작성된 이 문건들은 실장?처장주례회의에 보고됐다. 그러나 이규진 양형위 상임위원은 지난해 진상조사 당시 이 문건들에 대해 함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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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카페 가입해 판사 개인 사찰

행정처가 법관들의 온라인 모임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책을 모색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도 드러났다. 행정처는 2014년 말 여성판사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포털사이트 ‘다음’의 익명 법관 카페 ‘이판사판야단법석’의 현황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담은 문건을 작성했다. 정보 수집은 행정처 심의관이 카페 계정을 확보하거나, 별도로 회원 가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행정처는 상고법원 및 쌍용차 해고노동자 유죄 대법원 판결 등에 비판적인 글과 댓글을 ‘문제 글’로 분류한 뒤, “카페의 자발적 폐쇄를 유도”,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 등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설득·엄포용 카드로 활용” 등을 대응방안으로 마련했다. 다만 이 문건을 작성한 심의관은 해당 문건을 기조실장 등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추가조사위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 부적절성 알고도 ‘거점법관’ 심어

행정처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공들여 추진하던 상고법원 등에 대한 비판을 ‘대법원장·행정처 흔들기’로 규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정처 기조실이 2015년 7월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 동향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행정처는 “반대 목소리가 표출될 경우 외부 반대세력에 대한 설득이 불가한 상황이 될 수 있다. (반대 판사들의) 세 결집 자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행정처 스스로도 이런 전방위적 사찰이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8월 기조실에서 작성한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문건을 보면, 행정처 출신 판사 등 이른바 ‘거점 법관’을 통해 일선 법원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다는 계획이 나온다. 그러면서 “비공식적 정보수집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법관 사찰’, ‘재판 개입’ 등 큰 반발이 예상되므로 철저한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법행정 담당자가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면, 그 자체만으로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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