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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신율의 정치 읽기] 오락가락 갈팡질팡 정책에 무너지는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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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비트코인 거래소 폐쇄를 둘러싼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좌)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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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거래소 폐쇄, 시민단체 경력 인정, 통일부 적폐 청산 TF 성격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발표한 개성공단 폐쇄와 5·24 조치에 대한 평가, 유치원 영어교육을 둘러싼 문제…. 공통점이 무엇일까?

얼핏 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문재인정부가 국정을 운영할 때, 반복돼서는 안 되는 공통점이다.

지난 1월 11일 법무부는 비트코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 금지 법안을 준비 중이다”라며 “거래소 폐지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비난이 빗발쳤고 청와대가 나서서 한발 물러섰다. 7시간 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와 관련한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지만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다음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가상화폐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통해 가상화폐 대책 추진 상황을 점검했는데, 여기서 정부가 발표한 가상화폐 투기 근절을 위한 대책이 부처별로 시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법무부가 제시한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 제정안을 비롯한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부는 또다시 거래소 폐지에 대해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1월 16일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다시 “거래소 폐쇄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 했다. 도대체 뭐가 진심인지 알 수 없다.

정부의 갈팡질팡은 지난번 시민단체 경력의 공무원 호봉 문제에서도 드러났다.

인사처는 1월 4일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상 등록된 단체에서 상근한 경력을 동일 분야에 100%, 비동일 분야에 70% 이내로 반영하는 내용의 공무원 보수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 취지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힘쓴 경력을 공무원 호봉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 인사처 발표에 더불어민주당은 호응했다. 시민단체 종사자들이 사회적 제반 가치 실현에 기여했고, 앞장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한 일이 공무원이 하는 일과 유사하다고 보기 힘든 부분도 많다.

그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민들 역시 대한민국의 사회적 가치를 지키는 이들이다. 시민단체 활동을 한 것만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인사혁신처는 이를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사회적 반발은 물론 공무원 사회도 동요하니 다음에는 ‘없던 일’로 했다.

이런 특기(?)는 대북정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전(前) 정권의 개성공단 폐쇄, 전전(前前) 정권의 5·24 대북제재 조치가 적법 절차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결정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보수 정권의 통일교육이 ‘편향된 교육’이었다는 결과도 아울러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30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29일 5페이지 분량의 이행보고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서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라 개성공단 운영 중단 조치를 취했고, 현재 남북 간 경제협력은 없다”고 언급했다. 개성공단을 포함한 각종 협력 사업 중단을 국제사회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 것이다.

도대체 통일부 적폐 청산 TF가 밝힌 내용은 무엇이고, 정부가 UN에 보고한 내용은 어떤 것인가. 통일부 적폐 청산 TF가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어 정부 입장과 다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통일부라는 정부기관이 만든 조직이라면 이는 정부 입장과 무관할 수 없다.

유치원 영어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애초에는 금지한다고 하더니 금지 기조는 유지하되 내년 3월로 현장 적용을 1년 유예한다는 식으로 말하다가 시행 여부에 대한 결정 자체를 유예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학부모는 도대체 어떤 장단에 호흡을 맞춰야 하나.

이런 일련의 사례들 공통점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즉흥적 대처’다. 오전과 오후의 말이 다르고, 또 그다음 날 말이 다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정부가 자꾸 만든다.

이는 정부에 대한 신뢰 측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시킨다. 정부가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일관성을 보여줘야 한다. 일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신중함이다. 신중함은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관련 정부부처 간 긴밀한 의사 교환,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인 청와대와의 잦은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사례들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는 듯하다.

정부부처 간, 그리고 정부와 청와대 사이의 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한다면 국민들과 권력자 간의 소통도 제대로 되기 힘들 수 있다. 문재인정부는 소통을 강조해왔기에 이전 정부와 좀 다를 줄 알았고, 당연히 지금 같은 혼란과 혼선은 없을 줄 알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기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이는 자신의 생각과 청와대 생각이 다를 경우 얼마든지 의견을 개진하라는 뜻으로 비쳐졌다. 그런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것도 도처에서 연출되는 것을 보면 소통이나 부처와 공무원의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이번 정부의 소통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마저 든다.

진정한 소통은 역지사지에서 비롯된다. 역지사지를 통해 상대의 의견과 주장을 곱씹어보고 그 이후 스스로의 판단을 가미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는 결국 소통, 특히 정치적 과정에서의 소통은 이성적 영역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정치적 차원의 소통은 단순히 공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문재인정부가 보여주고 강조해온 소통은 단지 감성적 차원의 소통에만 그쳤던 게 아니었나 의구심이 든다.

더불어 신뢰는 모든 정책 추진의 근원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청와대 차원에서 권력기관 개편을 추진하려 할 때는 신뢰가 더욱 필요하다. 권력기관 개편의 핵심은,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신설, 그리고 경찰의 수사권 확대다. 공룡경찰 탄생이라는 말도 있지만,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국정원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이다. 대공수사는 그 어느 분야보다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그 지식을 바탕으로 한 북한 정세의 판단이다. 북한에 대한 전문성은 정보 소스와도 연결된다.

여기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경찰이 그런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그리고 수사와 정보를 분리할 경우 정보 소스의 노출을 막을 수 있는가다. 또한 대공수사는 신속한 검거가 생명일 수 있는데, 수사와 정보를 분리했을 경우 그런 신속한 검거가 가능할까도 의문이다. 이런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여론을 통해 국회를 압박하려 할 수 있는데, 이때도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필수적이다. 지금의 대통령 지지율만 놓고 보면 신뢰를 많이 받고 있는 듯하지만, 지지율에 입각한 신뢰도에 대한 판단은 정확하지 않다. 또 그런 신뢰는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유지될 수 있는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 청와대의 임무다. 신뢰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소통에 의해 구축된다. 진정한 정치적 소통이 이뤄지는 모습을 국민들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3호 (2018.1.24~2018.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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