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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기금형 퇴직연금 또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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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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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자금의 양대 축으로 부상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됐던 '기금형 퇴직연금제'가 또 무산됐다. 지난해부터 "노동자의 (퇴직연금) 선택권을 높여주겠다"며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고용노동부가 최근 갑작스레 법안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는 기업이 사외에 독립된 퇴직연금 신탁기관(비영리법인)을 설립한 후 신탁기관 내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영위원회를 통해 자금을 운영하는 제도다.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높고 근로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 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퇴직연금 선진국으로 꼽히는 호주 등이 이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반면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 운용방식은 '계약형'으로, 기업이 연금사업자인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어 퇴직금 관리나 운용을 위탁하는 형태다. 연금 관련 의사결정을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주도하는 기금형과 달리 계약형은 사업주가 주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근로자의 참여가 제한되고 수익을 내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사업주가 그동안 거래 관계가 있는 은행·보험사에 퇴직연금을 주로 맡기다 보니 수익률이 낮은 게 현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말 한국의 퇴직연금 적립금 147조원 중 은행과 생명·손해보험사가 운용하는 자금이 81%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전체 적립금의 89.0%에 달하는 130조원이 안정지향적인 원리금 보장상품에 묶였고 수익률도 연간 1.58%에 그쳤다. 같은 기간(2016년 연간 수익률 기준) 국민연금이 4.75%의 수익을 올렸던 것에 비하면 퇴직연금은 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극히 저조한 수익을 낸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부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정부입법안을 마련하고 법제처 심사 단계를 마친 상태였다. 통상 법제처 심사를 마친 정부 입법안은 차관회의·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은 후 국회 심의·의결 후에 공포 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 이 과정에서 국회에서 의사결정이 지연돼 몇 달씩 법안이 계류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법제처까지 통과한 법안을 국무회의 직전 해당 부처에서 스스로 철회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기금형 퇴직연금제와 관련해서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대외 연설에서 "정부는 노동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게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강조해오던 정책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안이 철회된 직후 "특별한 이유는 없고 전반적으로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해서 중단했다"며 "정부와 자산운용업계 모두 전반적으로 준비가 부족했다고 본다"며 말을 아꼈다. 또 향후 재추진 여부에 대해서도 "언제 다시 추진할지 등 향후 계획은 전혀 세운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는 고용노동부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 자산운용업계 등 이와 관련된 민관이 공동으로 법제화에 힘을 모았던 사안 중 하나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돌연 법안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미 2014년부터 이를 추진해오다가 지난해에는 자산운용업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운용업계와 함께 이를 논의해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사적 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려 "자산운용시장 성장의 과실이 일반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투자자 중심으로 자산운용시장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자산운용업계도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 이후 기업들이 투자책임자 등을 필요로 할 것에 대비해 인력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관련 상품을 내놓는 등 지난해부터 준비를 해 왔던 터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이미 지난해부터 준비를 모두 마치고 상품까지 판매 중인 상황이었는데 업계의 준비가 덜 돼 법안이 철회됐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한예경 기자 / 손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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