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MB의 ‘뻔뻔했던’ 1차 담화…‘2차 담화’ 피할 수 있을까

댓글 8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

한겨레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7일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대국민 담화에 나서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지금껏 이어졌던 기나긴 ‘레이스’의 결승선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사면초가에 몰린 이가 최후의 반격을 위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느 쪽으로든 결판이 나는 건 시간문제인 셈이다.

오랜 시간 참모들과 상의해 완성했을 이 전 대통령의 ‘반격 카드’는 실망스러웠다. 한 나라를 이끌었던 전직 대통령의 것이라고 보기엔 품격이 떨어지고,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멀리 내다보지 못한 얕은 ‘꼼수’ 수준이었다.

그가 내놓은 메시지의 핵심은 ‘자신을 향한 수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수사는 ‘정치 보복’도 아닌 그냥 ‘정치적 목적’의 수사였다. 이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한테 피해 본 게 없어 애초 ‘복수’가 성립되지 않는다. ‘광우병 촛불’로 맞은 정치적 위기를 넘기려 검찰을 이용한 사건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자기가 했던 ‘나쁜 짓’을 꺼내 들며, 나도 그랬으니 당연히 너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서울시장과 대통령 재임 시절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자주 썼다고 한다. 이번에도 딱 그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재임 시절 벌인 잘못된 수사로 ‘한 맺힌’ 정치세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대한민국 정치가 여전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상황도 외면했다. 오히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과거의 상처를 다시 후벼 팠다.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고, 유족에 대한 모독이다. 이문이 남으면 부끄러움이나 염치 같은 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다.

이 전 대통령에겐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줬던 시행착오가 아무런 참고나 반면교사가 되지 못한 모양이다.

“국민 여러분, 저는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스러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퇴임 후 지난 5년 동안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만, 저와 함께 일했던 고위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으므로 저는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이 전 대통령 17일 담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최순실씨는 (중략)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저로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2016년 10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 1차 대국민 담화)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는 애매한 수사가 등장할 뿐, 두 사람 모두 첫 담화에서 이미 드러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 대해 그랬듯이, 이 전 대통령도 ‘권력형 비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수사로 드러나고 있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실이나, 재판을 통해 인정된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노골적인 정치·선거 개입 등 헌정 질서 무력화 범죄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어떤 사과도 없었다.

참모들은 몰라도 자신의 잘못은 결코 없다는 태도, 진실규명 등 ‘법치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치환하는 대응 방식도 닮았다. 박 전 대통령이 어느 순간 재판을 거부하고 ‘정치 투쟁’을 선언했듯이, 이 전 대통령의 담화도 처음부터 법치가 아닌 정치를 겨냥한 모양새다.

다행히 그의 뻔한 정치적 노림수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이 노렸던 ‘보수 결집’이나 ‘보수층의 동요’가 크게 나타나는 것 같지도 않다. 진보·보수를 갈라치는 자신의 발언을 보수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이를 근거로 보수정당이 크게 떠들며 여론몰이를 하는 협업이 그의 재임 때처럼 조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한 보수를 향한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박 전 대통령의 부실하고 뻔뻔했던 1차 담화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국정농단 수사 때 그랬던 것처럼, 이 전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전 대통령도 어느 순간 ‘2차 담화’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아니 지금부터라도 진솔한 내용의 2차 담화를 준비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