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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OECD 자살률 부동의 1위…서울 야간 예방인력은 3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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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센터 신고받아도 "전화 상담만 가능" 반복

경찰 공조도 허술…"인력·예산 늘리고 절차 줄여야"

뉴스1

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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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류석우 기자 = # 지난해 겨울, 서울 강서 경찰서 소속 한 지구대로 자살 신고가 접수됐다. 강서구의 한 빌라에서 홀로 거주던 A씨(69)가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는 신고 전화였다.

경찰이 출동했을 땐 먼저 도착한 사회복지사가 A씨로부터 제초제를 빼앗은 뒤였다. 다행히 자살은 잠시 막았지만 A씨는 자살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인터넷을 검색해 자살예방센터 핫라인 번호로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자살예방센터는 일제히 "전화 상담만 가능하다"며 "현장 방문은 어렵다"는 답만 반복했다. 결국 A씨의 가슴에 맺힌 한은 출동했던 경찰관이 남아 들어줘야 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7 세계보건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4명으로 전세계 183개국 중 4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2003년부터 14년째 1위다.

2015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자살사건만 1만3513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뉴스1 취재 결과 서울시에서 야간에 자살 시도자가 발생할 경우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상담사는 고작 2~3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마다 늘어나는 자살사고에도 적절한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짚어봤다.

◇자살예방인력 태부족…2~3명이 서울 야간 자살신고 전담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우리나라 10~30대 사망원인의 1위는 '자살'이 꼽혔다. 특히 자살자 중 1위는 가족 없이 거주하는 65세 독거노인으로 집계됐다.

자살을 막기 위해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 30개의 민간 자살예방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복잡한 규정과 인력 부족 문제에 막혀 적절한 자살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를 포함해 생명의 전화 등 11개 민간 자살예방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규정상 민간기관은 '전화 상담'만 진행할 수 있다. 유일하게 출동대응이 가능한 곳은 서울자살예방센터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밤에 당직을 서는 인원은 2~3명뿐이다. 2~3명의 상담사가 야간에 서울 전체에서 발생하는 자살 신고와 현장 상담을 맡아야 하는 셈이다.

현장 상담에 대한 판단도 복잡한 지침을 거쳐 내려진다. 서울자살예방센터의 내부지침에 따르면 자살신고가 접수될 경우 Δ위험성 Δ지지체계 Δ협조능력 3가지 항목을 분류한 뒤 다시 Δ예측 불가성 Δ충동성 Δ충돌조절능력 Δ행동조절능력 Δ과거력 등 5개 하부항목으로 나눠 점수를 매기게 된다. 이 셈법을 거쳐 A등급에 해당하는 경우만 '정신보건전문요원의 즉각적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결국 자살예방센터가 채우지 못하는 대응을 현장에서 경찰이 하는 실정이다. 황순찬 서울자살예방센터장은 "실제로 경찰이 굉장히 많이 도와주고 있다"며 "현장에는 경찰이 나가고 자살예방센터는 운영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황 센터장은 쉽게 출동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2~3명이 모든 신고에 출동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최대한 위급한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출동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자살 상담을 담당하는 '정신보건전문인력'의 태부족도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한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하루에 접수되는 신고만 평균 70~80건에 달하지만 출동이 가능한 경우는 채 한 건 정도"라고 고백했다.

그나마 낮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출동상담을 분담하지만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운영되는 정신건강 복지센터는 25개소에 달하지만 센터마다 근무하는 정신보건전문인력은 평균 5~15명 남짓이다. 게다가 이들은 자살예방상담뿐만 아니라 각종 정신질환 상담까지 병행하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는 "구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1000명 정도를 10명이 관리해야 한다"며 "인력과 예산 부족을 항상 건의하지만 보건소에서는 오히려 인원을 감축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들어가는 예산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서울시정신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안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들어가는 예산은 2013년 192억원 정도에서 2016년 173억으로 오히려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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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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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예방센터 업무협조 '0점'…위험 인지해도 출동 못 해

경찰과 자살예방센터와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뉴스1이 서울 시내 지구대 3곳에 고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살예방센터가 있는지 취재한 결과, 출동 가능한 자살예방센터의 번호와 현황을 유지하고 있는 지구대는 한 곳도 없었다.

한 지구대의 관계자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인터넷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해본다"면서도 "운이 좋아 출동이 가능한 서울자살예방센터에 연결이 돼도 '출동을 못 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자살 대응 컨트롤 타워가 없는 게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지구대 관계자는 "전화하는 곳마다 다 출동은 안 한다며 다른 라인으로 전화해보라고 했다"며 "어디든 한 군데에 연락하면 체계적으로 신고를 재분배해주는 컨트롤타워가 있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복잡한 절차와 규정도 신속한 자살예방을 막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자살 시도자가 직접 신고한 경우가 아닌 제3자가 신고하는 경우 발생하는 개인정보동의문제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지인의 자살 시도를 알게 된 한모씨(27)는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고 "B씨가 자살을 하려고 하니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B씨의 동의 없이는 (자살예방센터 상담원이) 전화를 걸 수 없다"며 "B씨를 잘 설득해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자살예방센터가 도리어 제보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된 셈이다.

또 자살예방센터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결정해도 먼저 경찰에 신고하도록 해야 한다. 황 센터장은 "경찰에 의뢰를 받으면 즉시 출동할 수 있는 구조"라며 "제 3자가 우리에게 먼저 신고가 왔고 긴급한 상황이라면,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신고를 돌려야 하는 형태다. 김현정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도 "당연히 즉각 응대를 해야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행정절차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복잡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 "불필요한 절차 줄이고 인력·예산·업무협조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해마다 증가하는 자살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정과 절차를 축소하고 인력과 예산을 대폭 증원하는 한편 자살예방센터와 경찰의 업무협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정 위원장은 "자살을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2인1조가 됐든 3인 1조가 됐든 전문인력이 함께 움직이는 협업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불필요하거나 과도하게 복잡한 행정 절차를 줄이고 원스톱으로 한 번에 조치가 이뤄지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순찬 센터장도 "경찰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업무 협력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산이나 인력 부족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정신보건전문인력에 대한 인건비나 처우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정부 예산 자체도 선진국의 10분의 1수준"이라고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직원도 "결국 예산이 적은 상태에서 계속 가는 것"이라며 씁쓸함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자살 신고 전화에 대한 경각심도 부탁했다. 황 센터장은 "특히 음주자의 경우 술에 따른 충동일 경우가 많다"며 "혹여나 그 순간에 정말 어려운 분의 신고를 못 받을까 항상 걱정된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소방서도 자잘한 신고가 많아지면 정작 중요할 때 출동을 못한다"며 "허위신고나 술김에 시도하는 것에 대한 처벌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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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대교에 적힌 자살예방 문구/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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