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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뉴스 인사이드] 車·반려동물·라디오 진행…일본의 AI는 이미 '생활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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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가전서 반려동물까지 / 척척박사·말벗 ‘AI 스피커’ 출시 잇따라 / ‘딥러닝’ 기술 적용 아나운서 선보이기도 / 차 안에서 음성으로 집 에어컨 조작 가능 / 학교에서는 회화연습 등 보조교사 역할

일본 사회 전반에 인공지능(AI)이 스며들고 있다. 반려견의 모습으로 가족의 일원이 됐고, 스피커의 형태로 간단한 심부름을 하며 집 안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길거리에는 조만간 운전자가 필요 없는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가 다니게 될 전망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공장에서는 AI를 탑재한 로봇이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일보

강아지 로봇 ‘아이보’


◆일상 속으로 들어온 AI

일본에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가정이 많다. 애완동물이라기보다는 반려동물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를 AI가 파고들고 있다. 소니가 개의 해(무술년)인 올해 1월11일 오전 11시에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팔기 시작했다. 개가 짖는 소리를 일본에서는 ‘왕왕’이라고 표현하는데 숫자 ‘1’의 영어 발음이 비슷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초대 아이보는 1999년 판매되기 시작해 큰 사랑을 받았으나 소니의 경영 악화로 2006년 생산이 중단됐다. 하지만 최근 기업 경영이 호전되면서 AI를 탑재한 업그레이드형으로 부활했다. 눈에 있는 카메라로 주위를 인식하고 주인의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도 갖췄다. 주인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아이보의 성격은 개체마다 다르게 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장난감이 아니라 단 하나뿐인 가족으로 성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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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AI 스피커 프렌즈


‘AI 스피커’는 이미 널리 보급되고 있다. 아마존, 라인, 구글 등이 지난해 잇달아 자사 제품의 일본 내 판매를 시작했다. 머지않아 애플도 이 대열에 가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음성 인식이 가능한 AI를 활용해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조작을 할 수 있다. 일기예보나 뉴스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하면 인터넷 검색 결과를 대답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음악을 요청하면 찾아서 들려준다.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벗이 돼 줄 수도 있다.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한 AI도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TBS 라디오에서는 지난해 10월 AI가 사람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할 수 있는 AI의 기술을 살려 경마 예상이나 선곡을 하고 있다. 회화특화형 음성 AI가 고정 출연하며, 게스트와 대화도 한다.

일본 기업 스펙티(Spectee)는 지난해 11월 ‘딥러닝’(심층학습) 기술을 적용한 AI 아나운서 ‘아라키 유이’를 선보였다. 실제로 아나운서가 뉴스 원고를 읽은 음성 데이터 10만건을 기초로 학습했기 때문에 아라키 유이의 발음과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려운 지명이나 잘못 읽기 쉬운 한자 등을 학습하면서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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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프트뱅크의 감정 인식 AI 로봇 페퍼. 세계일보 자료사진


◆편리해지는 생활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 그렇다고 여행할 때마다 통역 가이드를 고용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상대 국가를 여행하는 데는 조만간 언어 장벽이 크게 낮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라인(LINE)이 귀에 걸기만 하면 외국어를 자국어로 들려주는 통역 이어폰을 올해 여름 일본과 한국에서 발매할 예정이다. 이어폰을 통해 들어온 음성을 인터넷을 통해 AI에 전달하면 AI가 다른 언어로 번역해 보내주는 구조다.

1980년대 ‘전격 Z작전’이라는 미국 드라마에 등장했던 말하는 인공지능 자동차 ‘키트’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15일 북미국제자동차쇼에서 미국 ‘아마존’의 회화형 AI ‘알렉사’를 탑재한 신형차를 발표했다. 차 안에서 음성으로 집의 에어컨을 조작할 수 있고,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다. 아마존은 AI 스피커의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자동차도 포함한 영역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도요타는 이르면 올해 봄 알렉사를 탑재한 고급 세단을 발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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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산의 자율주행 전기차 IMx


파나소닉은 알렉사를 내장한 차량탑재형 정보제공·오락시스템을 개발했다고 지난 8일 발표했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말을 걸어 길안내 등을 받을 수 있다. 통신환경이 불안정한 운전 중에도 목소리로 조작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인터넷에 연결되는 환경에서는 기능이 더욱 충실해진다. 귀가 도중에 집 난방이나 전기를 켜고, 자물쇠 잠그는 것을 잊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차와 집의 경계가 없어진다. 파나소닉은 구글의 AI ‘구글어시스턴트’를 적용한 차량탑재 시스템도 선보였다.

학교 교실에서도 AI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일본 교토의 도시샤중학교 등 일부 학교는 AI 학습 로봇 ‘뮤지오’를 영어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컴퓨터 교실처럼 학생 1명에게 1대의 뮤지오가 배정된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뮤지오는 학생들의 발음 교정과 회화 연습을 담당하는 등 보조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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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는 AI

AI의 급격한 발전과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일본에서는 AI와 로봇에 의한 자동화로 2030년 일본 내 고용이 현재보다 735만명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 바 있다. 실제로 공장에서는 AI를 탑재한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생산 현장을 지키기 시작했다.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도 AI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일본 내 점포 480곳 중 20%에 가까운 90곳을 통폐합하고 인력도 감축하기로 했다.

무인 자율주행차 역시 택시와 트럭 운전기사의 직업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2020년 도쿄올림픽 때 무인 자율주행 택시를 세계에 선보이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하지만 운전이라는 노동력을 제공해 먹고사는 사람들은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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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인한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을 때 그 책임을 AI에게만 묻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AI의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법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AI와 로봇의 병기화는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 무료통화 서비스 스카이프의 공동창업자 얀 탈린은 “무분별한 AI 개발 경쟁은 1달러로 사람을 죽이는 세계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등 AI와 로봇 개발 관련 기업인 116명은 지난해 8월 유엔에 ‘킬러 로봇’ 사용·개발 금지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스위스에서 AI가 판단해 움직이는 병기에 관한 첫 유엔 공식 전문가회의가 열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으며, 일본 기업 중에는 소니가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최근 소개했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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