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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다시 호출된 ‘박근혜의 입’, 특활비 재판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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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⑭ 박근혜의 두 재판

국선 접견도 거부하던 박근혜

‘국정원 특활비’ 추가 기소되자

유영하 변호사와 구치소서 접견

법원, 자택과 수표·예금 동결

유 변호사, 구치소에만 선임계

국정농단 재판은 계속 출석거부



한겨레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로 기소한 날, 유영하 변호사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찾았다. 유 변호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지장이 찍힌 선임계를 서울구치소에 제출했지만, 법원엔 19일까지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첫 공판에 나온 의뢰인과 변호인.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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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없으니 단역이 주목받는 걸까.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총수를 대거 증인으로 채택했다. 구본무 엘지(LG)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허창수 지에스(GS) 회장이 그 주인공.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새해 재판에 대기업 총수가 줄줄이 설 판이었다.

물론 순순히 나올 이들이 아니긴 했다. 재판부는 지난 9일 재판에서 “구본무 증인이 개인 사정으로, 김승연 증인은 건강상 이유로 출석하기 어렵다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조양호 회장은 3일 일찌감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고, 허창수 회장도 8일 아랍에미리트의 초청에 응해야 한다며 출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결국 이들의 불출석 사유서는 굳이 필요가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재판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통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11일 재판부에 구본무·김승연·조양호·허창수·신동빈 회장 등의 검찰 진술조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증인인부서를 직접 작성해 제출했다. 피고인이 진술증거들을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하면, 검찰로서도 당사자들을 재판에 부를 필요가 없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의 ‘원격 의견서’ 덕분에 증인으로 법정에 선 대기업 총수들은 못 보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관용이 있길 바란다”던 마지막 말을 직접 지킨 셈이다.

다시 뭉친 박근혜-유영하

대신 박 전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는 법정 밖에서 다시 만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가 4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에게서 36억5000만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뇌물 및 국고손실)로 박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하면서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또 기소한 날, 유영하 변호사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찾았다. 유 변호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지장이 찍힌 선임계를 서울구치소에 제출했다. 구치소에 제출한 선임계는 원활한 변호인 접견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변호인으로 활동하려면 법원에 선임계를 내야 한다. 하지만 유 변호사는 19일까지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법원에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으면 수사기록 등사 열람을 할 수 없는 등 변호인으로서 제대로 된 조력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보통 당사자에게 선임계를 받으면 바로 법원에 제출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유 변호사의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과 계속 만나고 있고,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증거인부서를 제출하기 전날에도 서울구치소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접견했다.

검찰 수사 발표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남재준 전 국정원장한테서 2013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매달 5000만원씩 모두 6억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의 현금 요구는 국정원장이 바뀌어도 계속됐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에게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매달 1억원씩 8억원을,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는 2015년 3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매달 1억~2억원씩 19억원을 상납받았다. ‘국정농단’ 의혹 제기가 두려웠는지, 2016년 8월부터 잠시 상납을 중단하다가 2016년 9월에 다시 이병호 전 원장에게서 2억원을 받았다. 이렇게 받은 돈이 35억원이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이병호 전 원장을 압박해 이원종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달된 1억5000만원이 추가된다.

이 많은 돈을 박 전 대통령은 어디에 썼을까. 먼저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재판에서도 등장했던 차명 휴대전화비, 기치료·운동치료비, 삼성동 자택 관리비로 3억6500만원을 썼다고 보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도 활동비로 9억7600만원을 지급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최순실씨가 이 활동비를 적은 메모가 발견돼 ‘비선 실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최씨가 고영태씨와 함께 운영한 대통령 전용 의상실 운영비로도 6억9100만원을 썼다고 한다. 다만 이재만 전 비서관이 평균적으로 한달에 2000만~1억2000만원을 쇼핑백에 넣어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데, 이렇게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받은 현금 총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로 배당됐다. 형사32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는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재판을 맡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32부는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12일 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자택과 수표, 예금을 동결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선고가 확정될 때까지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법원에 추징보전을 청구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을 67억원에 판 뒤 내곡동 자택을 28억원에 샀고, 차액 중 1억원짜리 수표 30장과 현금 10억여원을 유 변호사에게 맡겼다. 유 변호사는 30억원에 대해 “변호사 선임에 대비했다”고 검찰에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의 12일 추징보전 결정 직전에 유 변호사는 수표 30억원을 박 전 대통령 통장에 입금했고, 형사32부는 수표 30억원도 15일 추징보전을 결정했다.

국정원 특활비 뇌물 사건은 첫 재판이 열리지 않았지만 국정농단 재판은 계속됐다.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출연금 모금 관련해 기업 관계자들의 증인신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16일 정호성 전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해 9월18일에도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증언을 거부해 제대로 증인신문이 진행되지 않았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번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거부를 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시 계속 부른다면 증언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증인이 공소사실 범죄일람표 47건 문건을 최순실에게 보낸 것은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죠?”(검사)

“대통령께서 최순실씨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씀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씨한테 문건을 보내주라는 명시적 지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제가 대통령님의 뜻을 헤아려서 좀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일하는 과정에서 제가 과했던 것 같고 제 실수였습니다.”(정 전 비서관)

“증인이 탄핵심판 사건과 최순실 피고인 형사재판에 출석해서 문건을 보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건건이 지시하진 않았지만 포괄적으로 지시했다고 증언한 바 있죠?”

“포괄적이란 말이 그런 것을 내포하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님의 뜻을 헤아려서 일하는 과정에서 제가 과했던 것 같고 제 실수였습니다.”

“그럼 이렇게 바꿔 여쭙겠다. 대통령님이 최순실 의견을 들어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문건을 보내준 것은 맞나요?”

“구체적 지시라기보다도 제가 뜻을 헤아려서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들어보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기본적으로?”

“네.”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포괄적 지시’와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 문건을 전달해준 사실은 인정했지만, 여전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 전 비서관은 “외교안보 분야는 대통령께서 굉장히 잘하셨다. 정상들 사이에서도 외교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기억한다”, “중소기업에 관심이 굉장히 많으셨고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최씨가 한 일을 알았다면 이렇게 일이 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번 사건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말 최씨에게 속은 걸까? 지난해 12월13일 최순실씨의 재판에서는 정 전 비서관의 휴대전화에 녹음돼 있던 2013년 2월17일 ‘3자 대화’가 재생된 바 있다.

“손학규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하니까.”(박 전 대통령)

“굉장히 좋네요.”(최씨)

“경제부흥보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박 전 대통령)

“예. 근데 그동안 이 경제부흥이라는 단어를 우리 선생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는데, 제가 처음에 이렇게 딱 보니까 어, 이거.”(정 전 비서관)

“괜찮아요?”(박 전 대통령)

“먹힐 것 같더라고요.”(정 전 비서관)

“경제부흥은 괜찮아요.”(최씨)

“경제부흥, 국민행복.”(박 전 대통령)

“국민행복도 괜찮아요.”(최씨)

“그러면 문화라는 표현을 안 써도 그런 느낌이 오게, 뭔가 그 복지 대신 국민행복을 쓰듯이 뭐 그런 거 뭐.”(박 전 대통령)

“한번 좀 찾아봐요.”(최씨)

“예.”(정 전 비서관)

‘국민행복’을 내걸었던 대통령

‘국정농단 최장기 대기자’인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8일 법정에 섰다. 조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손경식 씨제이(CJ)그룹 회장에게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하라”고 강요한 혐의(강요미수)로 2016년 12월12일 기소됐다. 하지만 기소된 지 1년이 훌쩍 넘은 지난 8일 오전에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증인으로, 오후에는 자신의 첫 재판의 피고인으로 처음 법정에 섰다. 수사 당시 검찰은 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성창호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2013년 7월4일 경제부총리의 정례보고 뒤 박 전 대통령이 일어선 상태로 거두절미하고 ‘씨제이가 걱정된다. 손경식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이미경 부회장은 씨제이 경영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했죠?”(검사)

“네.”(조 전 수석)

“박 전 대통령이 씨제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사퇴를 얘기했다고 짐작했습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 전 수석은 다음날인 2013년 7월5일 손 회장을 만나 “이재현 회장 구속 상태에서 경영이 어렵지 않냐, 난국에는 손 회장 같은 경륜 있는 분이 경영에 나서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면 대한상의는 접어야 되고 자연스럽게 이미경 부회장도 경영에서 물러나는 게 맞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이 운영한 씨제이이앤엠(E&M)은 영화 <광해>, <변호인>에 투자했고, 티브이엔(tvN) 프로그램 <에스엔엘(SNL) 코리아>는 ‘여의도 텔레토비’를 통해 박 전 대통령 등 정치인을 풍자했다.

“(2013년 7월 하순께) 손 회장이 전화가 와 ‘브이아이피(VIP) 뜻 맞냐’고 하니, ‘확실하다’고 했고 ‘직접 들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죠?”

“네.”

“박 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업무 지시한 다음 ‘씨제이는 왜 그렇게 처리했냐’고 질책성 어조로 말했습니까? 그래서 ‘제가 실수했다. 책임지겠다’고 했죠?”

“네.”

“씨제이 관련해서 받은 지시는 이 부회장 사퇴 관련된 거고 민정수석실을 통해 손 회장과의 전화통화 녹취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에, 그 문제로 박 전 대통령이 질책한 거로 이해했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에 나오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과 조 전 수석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재판부를 믿을 수 없다”며 ‘국정농단’ 재판을 거부한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유영하 변호사와 ‘국정원 특활비 뇌물’ 재판에 대비하는 중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재판에도 출석할지는 첫 재판이 열릴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형사재판을 거부하고, 재판도 골라서 받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그는 ‘국민행복’을 내걸었던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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