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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알쓸신세]사우디도 허용한 여성운전, 금지한 국가는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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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북한과 가장 유사한 국가, 투르크메니스탄

올해 6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에게도 면허증을 발급할 예정입니다. 마침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차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쓴 나라가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여성 운전을 금지하고, 여성운전자를 단속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입니다.

교통사고는 여성 탓? 대통령 한 마디에 운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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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지난해 득표율 98%로 3선에 성공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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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타지키스탄의 뉴스통신사인 아시아플러스에 따르면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선 교통경찰이 여성 운전자를 적발해 운전을 중단시키고, 차를 주차장으로 보내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결정은 지난달 5일 이뤄졌습니다. 내무장관이 “교통사고 대부분이 여성 운전자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하자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시정하라”고 지시했다는 겁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여성 운전 말고도 또 한 가지를 금지했습니다.

검정 등 어두운 색깔의 자동차입니다. 거리에서 짙은 색 차량은 모조리 사라졌고, 차주들은 자동차를 하얀색이나 은색으로 도색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 역시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하얀색에 행운이 따른다고 믿습니다. 그는 하얀 궁전에 살고, 하얀 리무진을 타면서 하얀색에 집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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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바가트 전경.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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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의 흰색 건물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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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아슈하바트는 ‘하얀 대리석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죠.

2013년엔 전 세계에서 하얀 대리석 빌딩이 가장 많은 도시로 기네스북에 올랐고요. 아슈하바트엔 하얀 대리석 빌딩이 무려 543채가 있는데, 그 연면적이 450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여의도 면적(290만㎡)의 1.5배가 넘는 넓이입니다.

독재자 기행으로 더 유명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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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의 자원 부국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전 세계 언론에 오르내리며 유명해진 건 독재자들 때문입니다.

보통의 악질 독재자와는 살짝 다른 이들은 ‘해외토픽’에 어울릴법한 기행으로 이름을 떨쳤죠.

일단 초대 대통령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있습니다. 철권통치와 종신 독재, 개인숭배를 일삼았던 그는 살아생전 현존하는 최악의 독재자로 손꼽혔습니다. 덕분에 투르크메니스탄은 북한과 가장 유사한 국가로도 알려졌죠.

그는 1985년부터 2006년 사망할 때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습니다. 1991년 옛소련이 붕괴하기 전엔 소비에트 내 공화국의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이후엔 독립국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리고 취임 직후인 93년부터 슬슬 본색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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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블리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전 대통령. [사진=크렘린궁 홈페이지]


자신의 이름을 ‘투르크메니스탄의 지도자’란 뜻의 투르크멘바시(Turkmenbashi)로 개명하고, 그 앞에 항상 ‘베익(beyik·위대한)’이란 말을 붙이도록 합니다. ‘위대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지도자’로 자신을 부르도록 한 겁니다.

99년엔 대통령 임기 제한을 폐지해 종신 대통령이 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도시 ‘크라스노보드스크’를 자신의 이름에 따라 ‘투르크멘바시’로 바꿨고요, 94년 건설한 아슈하바트 국제공항 이름도 ‘사파르무라트 투르크멘바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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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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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번역, 출간된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루흐나마』


모든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은 건 기본입니다. 주요 공공건물에도 자신의 대형 초상화를 내걸었죠.

황금으로 도금한 동상을 곳곳에 세운 건 물론입니다. 동상은 언제나 태양을 바라보도록 자동으로 회전하게 만들어졌죠. 마치 태양이 그를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서전 형식으로『루흐나마』라는 경전을 써서 교과과정에 포함했고, 암송하도록 했습니다. ‘영혼의 책’을 뜻하는 『루흐나마』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성경이나 쿠란에 버금가는 책으로 여겨졌습니다. 니야조프는 방송에서 “이 책을 하루에 세 번 읽으면 천국에 간다”고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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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황금 동상.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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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그는 각종 기괴한 지시를 내리는데요,

남녀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뉴스 진행자의 화장을 금지하는가 하면, 젊은 남성의 장발과 턱수염도 금지합니다. 투르크메니스탄 고유의 문화가 아닌 오페라·발레 공연도 금지됩니다.

그중 가장 기이한 것은 월(月) 이름과 요일 명을 바꾼 겁니다. 이를테면 1월을 자신을 지칭하는 ‘투르크멘바시’, 4월을 자기 어머니 이름인 구르반솔탄으로 변경했고요, 월요일은 ‘중요한 날’, 수요일은 ‘좋은 날’, 일요일은 ‘쉬는 날’ 등으로 바꿨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니야조프만의 '역법'은 2008년 그가 사망한 뒤 폐지됩니다.

이런 절대 독재에도 국민이 반발하지 않았던 건 가스와 석유개발로 쏟아져 들어온 외화 덕분입니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펼쳤고, 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요금도 무료였습니다. 1달러만 내면 휘발유를 60리터나 살 수 있을 정도로 물가도 낮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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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카스피해 연안 아와자에 문을 연 스포츠 경기장 개장식에 참석한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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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길 답습하는 현 대통령
영원한 권력을 꿈꿨던 니야조프는 2006년 허무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심장마비였습니다.

독재자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극심한 권력 투쟁과 혼란이 예상됐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동요 없이 새 권력자를 맞습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현 대통령입니다.

니야조프의 사망부터 새 대통령 취임까지 공백기는 2달. 투르크메니스탄은 서방 기자를 모두 내쫓고 완전히 문호를 폐쇄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평화로운 권력 교체가 가능했던 이유로 ‘우민화 정책’을 꼽는 분석도 있습니다. 『루흐나마』 같은 책을 강제한 효과를 봤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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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러시아 소치를 방문한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왼쪽).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생일 선물 겸 친교의 상징으로 투르크멘 셰퍼드를 선물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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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한 강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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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무하메도프는 개인숭배를 타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내 전임자를 답습합니다.

관공서에 자신의 사진을 내걸었고, 금박을 입힌 자신의 기마 동상을 수도 한복판에 세웠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강제 모금해 세운 동상의 제막식엔 학생들이 동원돼 대통령 찬양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요.

몇해 전부터는 자신의 사진을 강매하는가 하면, 일대기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대선서 98% 득표율로 3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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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수도 아슈하바트에 세워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기마 동상. [연합뉴스]


2016년엔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70세인 대통령 후보의 나이 제한도 없앴습니다. 헌법에 대통령 연임 횟수 제한이 없으니 종신집권의 길이 열린 셈입니다.

나름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국제사회에 진입하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시장경제 활성화 및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국유재산 민영화법 시행을 천명하기도 했고요. 2013년엔 최초로 복수정당제를 도입했습니다.

지난해엔 최초로 국제행사인 실내 무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도 했고요

그는 지난해 초 실시된 대선에서 득표율 97.6%로 3선에 성공합니다. 경쟁 후보가 8명이나 있었는데 말입니다.

당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대선을 앞두고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니야조프의 일부 해악적 정책을 개혁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핵심적 권력남용 정책은 계속하고 있다”며 “유권자들이 모든 후보에 대해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6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생일파티에 초대돼 노래했던 미국의 가수 제니퍼 로페즈는 독재자를 찬양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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