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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미세먼지의 습격⑦]거리가 일터인 택배원ㆍ배달원 “마스크쓰고 일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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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숨 몰아 쉬며 일하는데 “마스크는 불편해”

-고객 상대 서비스업종 “불쾌해할까봐…” 눈치도

-의경 보급용 마스크 부족…주의보 모르는 사람도



[헤럴드경제=정세희ㆍ김유진 기자]“나쁜 거 왜 모르겠어요. 일하다 보면 땀나고 숨 차는데 마스크 끼면 답답해서 일을 못해요” (서울시 종로구 청소노동자 박 모(62) 씨)

계속되는 미세먼지의 습격에 일반 시민들은 실내에서 공기청정기를 틀고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등 분주하지만 미세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들이 있다. 바로 야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에도 마스크 없이 먼지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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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없이 청소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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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범벅에 마스크는 불편할 뿐 =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음식 배달원 최모(24) 씨는 마스크 얘기에 머리에 쓴 헬맷을 가리켰다. 그는 “마스크에 헬멧까지 쓰면 김이 서려 앞이 잘 안 보인다”며 “미세먼지가 안 좋은 것은 알지만 당장 배달이 먼저”라고 말했다. 최 씨는 “어차피 계속 자동차 매연 마시면서 배달해왔는데 미세먼지나 매연이나…”라며 씁쓸해했다.

길거리에서 가게 홍보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미세먼지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일하고 있었다. 서울시 마포구의 번화가에는 식당 플래카드를 들고 “어서 오세요”라고 외치는 50대 남성이 보였다.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목청껏 호객 행위를 했다. 그 옆으로 마스크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환경미화원도 일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 환경미화원 박모(64) 씨 역시 마스크를 쓰려고 해도 일 할 때 불편해 계속 벗어두게 된다고 했다. 그는 “추운 날엔 마스크를 쓰면 뜨거운 입김에 모자에 고드름이 생겨버린다. 일에 방해가 되니 자연스럽게 안 쓰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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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일을 하는 한 할아버지의 장갑. 아침에 새 장갑을 들고 나왔지만 금세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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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쓰면 건방져 보인다고 항의…눈치 보여요 =고객들을 대면해야하는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못 쓴다.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50대 쇼핑몰 주차관리요원 김 모씨는 “지하주차장은 먼지도 많아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주차 안내를 하려면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마스크로 입을 막고 있으면 당장 고객이 안 들린다고 소리친다”며 “목이 계속 칼칼하고 눈도 침침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고객을 방문해 대면해야 하는 택배원들에게도 마스크는 그림의 떡이었다. 안모(42) 씨는 “가정집을 방문할 때 마스크를 쓰고 벨을 누르면 문을 잘 열어주겠느냐”며 “매번 배달할 때마다 마스크를 벗는 게 더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폐지 줍는 일을 하는 조모(82) 씨는 미세먼지가 무섭지 않다고 했다. 그는 노인들이 미세먼지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에 “70평생 먼지 들이켜고도 잘 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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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일하고 있는 의경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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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경들 “주의보 내려졌는지 몰랐어요” = 서울 중구 및 영등포구 일대에서 경비를 서는 의경들은 열에 아홉이 마스크 미착용 상태였다.

영등포구에서 야외 근무를 하던 한 의경은 보급받는 마스크 개수가 충분치 않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서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이 곳은 보급받는 일회용 마스크 수가 부족하다. 한번 쓰고 버릴 수가 없어서 썼던 마스크를 여러 번 써야 하는데 찝찝해서 안 쓰게 된다”고 말했다.

보급 받는 마스크가 불편하다는 이도 있었다. 서울 중구에서 근무하는 한 의경은 “보급 마스크가 얼굴에 제대로 밀착이 안 된다. 안경에 김까지 서리니까 불편해서 안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얇고 힘 없는 마스크가 ‘과연 미세먼지를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만난 의경들 대다수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린 사실조차 모르는 모습이었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기상정보 접근에 제약이 있고, 공기가 나쁘다, 좋다 수준 이상으로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는 설명이 따라왔다. 한 의경은 “다음날 뉴스에 나올 정도가 되면 마스크 쓰라고 하더라”고 했지만 이날 오후 12시 기준으로 서울에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된 이날은 특별한 공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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