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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이 만난 사람] `디지털 혁신 전문가`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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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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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스타트업의 발 빠른 변화와 혁신적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많이 배웠다. 올해는 대기업들에서 전방위적인 혁신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부회장은 "대기업은 전통이고 스타트업은 혁신이라는 지금까지의 프레임이 깨질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직접 만나본 정 부회장은 관심 분야가 넓고 박학다식해서 마치 '르네상스인'처럼 느껴졌다. 그에게 붙은 수식어는 '금융업 최장 CEO' '2030세대의 멘토' '공연 예술계 큰손' '디지털 혁신 전문가' 등이다. 이들 별칭만 보더라도 서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넓은 스펙트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매일경제는 최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정장이 아닌 캐주얼한 와이셔츠 차림에 짧은 머리는 스포츠인을 연상시켰다. 정 부회장이 공식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7년여 만이다.

―대기업에서 혁신이 나온다고 이야기한 근거는.

▷그동안 많은 대기업이 스타트업 DNA를 충분하게 이식했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문화의 스타트업화다. 조직 단위를 잘게 쪼개서 초소형 팀제로 운영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회사를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민첩한(Agile) 조직으로 만들었다. 팀 단위 조직과 해체 전권을 실장에게 위임하는 파격적인 변화다. 기존에는 팀 단위 등 조직 변경은 회사 승인이 있어야 가능했지만 현대카드는 본부 산하 실장이 소속 팀 구성과 변화를 민첩하게 관리할 수 있다.

―현대카드가 이식한 또 다른 스타트업 DNA는.

▷근무 환경을 대폭 스타트업화했다. 자유롭게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플렉스타임(Flex Time)을 지난해 8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는 진취적이고 효율적인 기업문화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개인 취향과 업무 효율성을 고려한 새로운 근무복장 규정인 '뉴오피스룩(New Office Look)'도 도입했다. 복장뿐 아니라 '플렉스런치(Flex Lunch)'로 정해진 점심시간을 폐지하고 임직원이 직접 1시간을 정해 스스로에게 맞게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했다. 대기업의 혁신은 단순히 스타트업 문화만 이식하는 게 아니다.

―현대카드가 데이터 비즈니스를 중시하는 것도 스타트업 DNA를 이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스타트업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사업 모델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조건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기업도 데이터 비즈니스를 추구하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 물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나 육성, 인수·합병 같은 물리적인 결합도 기업 혁신을 일으키는 방법 중 하나다. 실제로 현대카드는 스타트업 공용 사무실인 스튜디오 블랙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이곳 입주 스타트업과 세로카드 전용 스마트폰 케이스를 제작하는 등 협업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혁신 강국 중 하나인 프랑스나 영국과 비교해봤을 때도 더 자유로운 사고와 열정을 갖췄다. 이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해 준다면 기업가 정신이 더욱 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업 분야를 법제화하는 포지티브 규제보다 기업이 해서는 안 되는 일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훨씬 더 경쟁력 있는 방식이다.

―4차 산업혁명은 업(業)에 대한 정의까지 재정립한다는 견해도 피력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기업의 '업'이 변화하는 것이다. 도서를 판매하던 기존 사업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업을 변화시켜 결국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까지 내놓은 아마존이 대표 사례다. 신용카드사만 보더라도 지불 수단이라는 기본적 기능이 있지만 그 외에는 전부 변화하고 있다. 한때는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조금 더 유용한 혜택을 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도 있었고, 한때는 디자인적으로 세련된 카드를 만드는 데 집중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모든 걸 넘어서는 새로운 업이 태동하는 시기다. 기업의 미래는 리더와 구성원들의 유연한 사고에 따라 좌우된다. 리더와 구성원들이 '사업의 정의'가 계속 바뀌어가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기업의 운명도 결정된다.

―생존전략은 '데이터 비즈니스'라고 강조하는데.

▷현대카드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데이터 비즈니스 사업자로 변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AI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매년 그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AI의 기틀이 되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결제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신용카드사에 이를 활용한 데이터 비즈니스는 숙명적인 영역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빅데이터 사업자들이 아직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데이터 분야가 있다면 바로 결제 영역일 것이다. 구글이 갖고 싶어하는 정보가 낭비되고 있는 것을 두고볼 수 없어 직접 뛰어들었다. 단기간 성과를 위해서 AI와 빅데이터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현대카드는 앞으로 10년 동안 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해나갈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블록체인이 인터넷 이후 최대 발명품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물론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용화 속도가 더디다는 점은 아쉽다. 지난 수년간 블록체인 시장을 지켜보며 그 기술적 파급력에 비해 산업적 이륙이 늦다고 느껴져 안타깝다. 다만 금융업뿐 아니라 관공서를 포함한 거의 모든 행정·산업 분야에 블록체인이 정착되는 사회가 온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트코인에 대한 생각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장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현재 불고 있는 열풍이 냉정하게 봤을 때 블록체인 산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산업적인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허망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목장에서도 금융 전문가를 뽑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배경은.

▷데이터라는 원석뿐 아니라 이를 가공할 수 있는 인재야말로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다. 목장에서도 금융 전문가를 뽑고, 공장에서 인문학도를 뽑아야 한다. 요즘처럼 산업별로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엔 인재에 대한 정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 분야 전문가만 몰아 뽑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뽑아 융합시켜야 한다. 우리는 전 직원 중 절반 정도는 비금융권에서 뽑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진정 새로운 비즈니스가 나온다고 믿고 있다.

―마음에 두고 있는 데이터 비즈니스의 목표는.

▷데이터산업의 목표는 결국 개인화다. 현재 대부분 국내 대기업의 비즈니스는 카테고리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40대·남성·직장인 등으로 구분해 소비자를 타기팅하고 혜택이나 광고를 제공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40대 남성 직장인 100명을 모아놓고 보면 과연 공통점이 몇 개나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세분화 함정에 빠져 있으면 기업에 미래가 없다. 이를 넘어서서 개개인 성향에 맞는 맞춤형 비즈니스를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는 최근 영화 옥자를 6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개개인 취향에 맞춰 송출했고, 구글은 70% 이상 개인화 서비스 적용에 성공했다. 글로벌에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 비즈니스는 이미 상용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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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회장은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폴로잉하는 사람이 10만명을 넘어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을 정도로 팬덤을 갖고 있다.

SNS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뉴미디어 시대에는 소비자와 기업 대표 간 거리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전략을 모색하고 경영철학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많은 게시물 중 실수한 말이 가장 많이 공유되고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리스크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리더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시골 마을 국숫집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발언했는데.

▷새로운 업을 찾는 과정은 필수적으로 리더십이 수반돼야 한다. 그 리더십은 어느 곳에서든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열린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이를 위해 스스로는 인사이트 트립을 자주 다니는 편이다. 시골 마을 국숫집에 들어갔다가 그곳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고 디자인 측면에서 영감을 받은 경험도 있다. 처리할 일 때문에 바빠서 여행하기 어려울 때는 독서를 통해서라도 간접 경험을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신용카드에 디자인과 예술을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신용카드 업계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많이 지적을 받아 구성원들 사기가 높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로 사업적 지평선을 넓힌 결과 요즘은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금융업계에서 신용카드업 자부심을 조금 높인 셈이다.

정태영 부회장은

△서울대 불문학과 △미국 MIT 경영학 석사(MBA)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장 △현대정공 미주·멕시코 법인장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기아자동차 구매본부장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

[대담 =김대영 금융부장 / 정리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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