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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삼천지교의 부동산경제학③]그 시절 8학군 열기,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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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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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강남행 이끌던 학군제
30년간 아파트값 16배 상승케
최근 자사고 이슈로 수요 더 늘어

[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 8학군'의 상징성은 건재하다. 부동산 '강남 불패' 공식은 교통망과 주거·업무·상업시설의 집중 등 다양한 요소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대적인 요소는 8학군으로 통칭되는 교육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명문 고등학교'가 모인 강남에서 아이를 키우려는 욕구가 이 지역 집값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의 학생 우선선발권 폐지 결정이 발표되면서 8학군 내 일반계 명문고 진학 희망 수요가 이 지역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8학군은 사실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개념이다. 2008년 도입된 '고교 3단계 전형'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교육 제도에서 8학군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부동산 강남불패를 만든 학군 프리미엄의 역사는 1070년대부터 시작된다. 1970년대 후반 서울 사대문 내 명문 고등학교로 손꼽히던 곳들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대거 이전했다. 정부가 강남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해 내린 조치 때문이었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가 종로구 화동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간 것을 시작으로 휘문고, 정신여고, 서울고, 숙명여고, 중동고, 경기여고, 보성고 등이 강남·서초·송파로 위치를 옮겼다. 1974년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고 학군제가 모습을 갖춘 것과 맞물려 강남이 교육 중심지로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강남 8학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78년이지만 1980년 거주지 중심의 완전학군제가 도입되면서 8학군이 본격적으로 위상을 갖췄다. 서울을 지역에 따라 9개 학군으로 나누고 학군 배정을 거주지 중심으로 바꾸자 강남 8학군 이사 수요가 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특목고가 8학군 일반고의 지위를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과외 금지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사교육 시장은 급속도로 번성하자 학부모들은 다시 강남 8학군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치동 학원가는 현재까지도 강남의 교육 프리미엄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상위 중산층 부모들이 원하는 면학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남 프리미엄의 원인이다. 올해 고3이 된 자녀의 학원 문제로 최근 대치동으로 이사한 학부모 김모씨는 "대치동에선 중학생도 주말이라고 놀지 않는 분위기가 잡혀 있다"며 "함께 놀 친구가 없어 덩달아 공부하게 되는 환경이 학부모들의 8학군 진입 열기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8학군 열풍'은 강남 집값을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서울 주요 지역의 아파트값 변화를 분석한 결과 강남 아파트 값은 30년 만에 3.3㎡당 285만원에서 4536만원으로 16배 상승했다(2017년 기준). 같은 기간 강북 아파트 오름세(7배) 대비 큰 폭의 상승세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육열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강남 8학군 외에도 내로라하는 학세권 지역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강남 8학군의 상징성은 따라오지 못한다. 1990년대 초반 조성된 분당, 일산, 중동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역시 각 지역별 명문고가 조성 초기 집값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비평준화였던 이들 지역은 분당 서현고, 일산 백석고 등을 중심으로 학세권 수요가 몰렸다. 그러나 2002년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에 고교 평준화가 도입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거주 지역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목고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입시 제도가 여러 차례 변화하면서 '결국은 강남'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KB주택가격동향자료에 따르면 2001년 초부터 2003년 초까지 서울 강남권 주택매매가격지수는 20.4% 올랐다. 서울 전역(17.9%)이나 수도권 평균치(18.6%)보다 높았다. 고양, 부천 등 1기 신도시가 있는 지역이나 수도권의 명문고로 꼽히던 안양고가 있던 안양 등도 17.0~17.6%로 상대적으로 상승률이 낮았다.

서울에선 강남과 함께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이 '3대 학군'으로 꼽힌다. 이들 역시 올 겨울방학 기간 움직임이 심상찮았다. 목동 신시가지 7단지 전용 53.880㎡ 매맷값은 이달 7억6000만원으로 지난해 2월(6억9000만원) 대비 7000만원 상승했다. 학원가 중심지이면서 목운·서종초, 목동중, 신서·양정·한가람·진명여고 등이 밀집해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강북지역 대표 학원가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주변 역시 마찬가지다. 중계동 청구3차 아파트 전용 84.770㎡는 지난해 1월 5억3000만~5억9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지난해 12월엔 6억4000만원으로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최근 끝을 모르고 오르는 강남 부동산을 겨냥해 '최고 강도의 무기한 현장 단속'을 공언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강남의 8학군 프리미엄발 집값 상승은 막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강남은 업무(근무조건) 근접성, 인프라나 문화 향유 등을 위한 수요가 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학군 수요는 자사고 우선선발권 폐지 등으로 최근 확대된 상태"라며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은 어떤 규제에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대기 수요는 크게 줄지 않는다. 규제보단 근본 원인을 풀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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