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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15년째 딸 아이 밥상 차리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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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정담 에세이집 낸 김진영씨

유명 셰프들이 찾는 식재료 전문가

“중요한 건 레시피 아닌 추억”

중앙일보

남대문 시장 채소가게에서 저녁 반찬거리로 콜라비를 고르고 있는 김진영씨.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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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아빠랑 얘기도 잘 안 해. 근데 난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춰주잖아. 그러니까 다음에는 시장 입구에서 파는 떡꼬치 해줘.” “응, 말만 해. 아빠가 뭐든 다 해줄게.”

중2짜리 딸아이 윤희와 아빠 김진영(47)씨가 저녁 시간에 나눈 대화다. 마마·호한보다 무섭다는 중2병. 하지만 이들 부녀에겐 상관없는 얘기다. 김진영씨는 모든 게 ‘밥상머리 대화’ 덕분이라고 한다.

김씨는 15년째 딸아이의 아침·저녁 밥상을 차리고 있다. 그는 “시작은 맞벌이 부부의 역할 분담이었지만, 지금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을 선물해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식품가공학을 전공하고 군대에서도 취사병이었던 김씨는 20여 년간 식품MD로 활동했다. 냉동만두를 제품화할 때 돼지고기는 어느 농장의 것을, 어느 부위를, 얼마큼 넣을지, 포장은 몇 그램 단위로 할지 등등.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마케팅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지금까지 식자재를 찾아다닌 거리를 환산하면 60만㎞. 당연히 전국 어느 곳에 최고의 식재료 산지가 있는지 환하다. 덕분에 그는 박찬일·권숙수·왕육성·레이먼 킴·정호영 등 유명 셰프들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식재료 전문가로 꼽힌다.

그런 김씨가 차려내는 외동딸 윤희의 식탁이니 얼마나 특별할까. 김씨는 최근 ‘딸 윤희를 위해 특별한 식탁을 차리는 아빠, 유니셰프’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인플루엔셜)을 냈다. 3년 전부터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을 추린 것이다.

책에는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한 여러 과정이 적혀 있다. 물론 재료마다 김씨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산지와 브랜드도 언급된다. ‘유니셰프’ 경력 15년차로서 홀로 체득한 그만의 조리 팁과 양념 비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글을 차근차근 읽어야만 얻을 수 있다. 여느 요리책들처럼 재료 산지와 레시피가 따로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불친절한 요리책이다. 그런데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애초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윤희와 함께한 경험과 수다를 기록하기 위해서였으니 맛있는 한 끼는 그 과정에 필요한 ‘밑밥’같은 것이다. 김씨 부녀의 밥상에서 중요한 건 레시피가 아니라 추억이다.

“윤희는 진짜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어요. 김치 싫어하죠, 채소도 상추 아니면 안 먹죠. 카레를 좋아하면서도 채소를 싫어해서 재료를 일일이 믹서로 갈아서 ‘채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카레’를 만들어야 한다니까요.”

그래도 김씨는 윤희의 까탈스러운 식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이거나 아이를 닦달하는 순간, 그 밥상은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걸인의 밥상이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먹게 될지 모르는데, 조바심 내면서 아이와의 대화를 불편하게 할 필요가 없죠. 밥상은 언제나 즐거워야 할 자리니까요. 대신 싫어하는 음식도 한두 번은 꼭 맛을 보게 해요. 맛을 일단 보고 계속 먹고 싶은 맛인지 아닌지 스스로 선택하게 하죠.”

김씨가 윤희의 밥상을 차리며 신경 쓰는 것은 딱 하나.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식품MD이니 당연히 식재료다.

“전 조금 비싸더라도 제일 좋은 제철 식재료를 사요. 음식 맛은 식재료에 달렸으니까요. 가계부엔 큰 차이 없어요.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메인요리에 집중하는 전략이니까요. 그렇게 메인 요리를 바꾸다보면 아이도 매일 식탁을 기대하게 되고, 할 얘기도 늘어나죠.”

딸에게 애걸하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 톡톡 쏘아대는 딸. 아빠와 딸의 밥상은 늘 ‘단짠단짠’ 행복한 맛으로 가득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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