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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결선 진출한 협연자에 맞춰 공정하게 연주하는 게 우리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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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조성진은 경이로운(phenomenal) 피아니스트입니다."

바르샤바 필하모닉의 지휘자 야체크 카스프치크는 조성진을 이와 같이 회상했다. 쇼팽의 조국, 폴란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바르샤바 필하모닉은 5년마다 전 세계 음악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보자들과 함께 마지막 결선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5년 조성진의 마지막 무대도 함께했다.

카스프치크는 "쇼팽 콩쿠르에서 협연자와 함께한다는 건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요구받게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결선 진출자들이 같은 쇼팽곡을 연주하는데 콩쿠르인 만큼 공정하게 같은 에너지를 유지하면서도 협연자에 맞춰 유연하게 연주해야 한다.

바르샤바 필은 쇼팽뿐만 아니라 고레츠키, 루토스와프스키로 이어지는 낭만 이후 근현대 폴란드 음악을 세계로 보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번 18일 내한공연도 폴란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폴란드 공화국 초대 총리를 역임한 파데레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곡'으로 시작한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답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도 선보인다. 2010년 쇼팽 콩쿠르 준우승자 잉골프 분더(32)가 협연자로 나선다. 당시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연주 후 유일하게 관객 기립박수를 받으며 베스트 협주곡상, 특별상(폴로네이즈상)을 거머쥔 오스트리아의 젊은 피아니스트다.

폴란드 음악을 알리는 데 힘쓰되 구애받진 않는다. 그는 "폴란드 음악이 현대 음악사에 남긴 족적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건 보편적인 음악 언어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폴란드 음악은 이렇다'라고 정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의 뛰어난 오케스트라 사이에 음악적 특색을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독특한 그들만의 사운드를 고수하는 빈필을 제외하고요. 예를 들어 베를린 필의 음악을 '독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국제적'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저희의 목표도 마찬가지죠. 저희 단원 중 폴란드인이 많지만 이들은 전 세계 유수의 음악대학교에서 공부한 연주자들이죠. 이들의 음악성을 '폴란드'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르샤바 필은 그 어느 오케스트라보다도 빠르다. 효율적이고 신속한 레코딩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물리적 속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애니메이션, 게임, 음악 등을 통해 클래식의 현대화란 측면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회사 반다이남코, 세가와 합작해 '카우보이 비밥'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유명 애니메이션과 명작 게임에 음악적으로 기여해왔다.

'클래식의 대중화와 디지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당연하다(Absolutely)"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우리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음악을 연주되는 방식도 바뀌었다. 인터넷을 통해 바르샤바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연주를 동시에 전 세계가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라며 음악의 디지털화를 크게 환영했다. 실제 2013년 9월 바르샤바 필하모닉에 부임한 카스프치크는 자신의 임기를 바인베르크 교향곡 4번 인터넷 실황중계로 시작했다. 이를 녹음한 음반은 워너 클래식의 프레드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카스프치크는 치밀한 논리를 가지고 깐깐하게 음표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는 지휘자는 아니다. 종종 그의 지휘는 '두루마리'에 비유되곤 한다. 조금만 힘을 줘도 주루룩 풀어져 버리는 두루마리처럼 유려한 지휘가 일품이다.

실제로 그는 '자연스러움(naturalness)'을 지휘자로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로 꼽았다. "자연스러움은 어려운 곡도 쉽게 연주하는 비결이죠. 무엇보다 그래야만 관객들의 마음에 곧바로 감동을 전할 수 있습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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