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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루머 온상 가상화폐 토론방...오락가락 정부 루머 더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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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돈이 점점 빠져나가니까 증시 세력이 정부에 로비하는 겁니다.”
“정부가 코스닥시장 살리려고 하잖아요. 당연히 코인 시장부터 죽여야겠죠.”
“시세를 낮춘 다음 정부가 대량 매수하려는 꼼수입니다.”

가상화폐 광풍이 불면서 수많은 온라인 토론방이 개설됐다. 예측하기 어려운 가상화폐 시세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적극적으로 주고받으며 의기투합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가상화폐 토론방 분위기는 주식 투자자 커뮤니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확인되지 않은 투자정보나 루머를 기정사실화해 유통하는 경우나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 토론방이 익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부정확한 정보가 쉽게 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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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 토론방 “코스닥 활성화 위해 가상화폐 죽인다”

이달 11~12일 가상화폐 투자자 500여명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을 압박하는 이유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가장 큰 공감을 얻은 것은 “정부가 코스닥시장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가상화폐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한 투자자는 “처음에는 가상화폐 시장이 커봐야 얼마나 크겠냐는 생각으로 방치하다가 자금이 죄다 코인 쪽으로 흘러가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것”이라며 “주식시장 세력이 국회와 정부에 입김을 넣어 죄없는 가상통화 투자자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주장이 더 이어졌고, 추측은 어느 순간부터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어떤 투자자는 “북한보다 더한 정부”라며 현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또 다른 이는 “정부가 비트코인을 싸게 만든 후 대량 매집하려는 의도”라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대화 참여자들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최근 발언을 분석하며 ‘문재인 정부 음모론’의 근거를 강화해 나갔다. 박 장관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업 자본화해야 할 자금이 가상화폐 거래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산업 자본화해야 할 자금’이 바로 코스닥시장에 보내야 하는 돈이라는 것이다.

같은날 금융위원회가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사실도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투자자들은 “주식에만 투자하라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상화폐를 규제하니 너무 괘씸한 생각이 든다”며 “서민한테 제대로 해주는 게 하나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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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가상화폐 토론방 화면 캡처



이런 식의 토론이 카카오톡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가상화폐 시장에 관한 규제 방침을 내놓을 때마다 투자자들은 텔레그램·인터넷 커뮤니티 등 여러 온라인 토론방에서 각종 추측을 쏟아내며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해왔다.

지난달 11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 거래가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고, 부작용이 눈에 뻔히 보인다”고 말했을 때도 온라인 토론방에서는 “정부가 더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당시 텔레그램의 한 가상화폐 토론방 참여자는 “2030세대 지지율 떨어지는 소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오락가락 정부 대처가 루머 더 키워

물론 가상화폐 투자자들도 온라인 토론방에서 공유되는 정보를 맹신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정부 관련 루머가 사실처럼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응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다른 가상화폐) 투자자인 회사원 허필규(가명)씨는 “정부 부처끼리 말이 서로 다르고 연일 갈팡질팡하면서 시장 혼란만 가중시키니까 미심쩍은 소문들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지’ 발언 논란과 어설픈 수습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박 장관은 지난 11일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를 목표로 하는 법무부 안(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법무부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시세는 즉시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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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1월 13일 오후 11시 1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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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크게 동요치자 청와대가 급히 진화에 나섰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는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12일에도 청와대는 “박 장관의 가상화폐 관련 발언은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청와대는 특정 부처 장관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듯 해명했지만 같은 시각 가상화폐 토론방 참여자들의 해석은 전혀 달랐다. 한 카카오톡 토론방 참여자는 “부처마다 입장이 아무리 달라도 조율도 안된 상태에서 ‘폐지’와 같은 강한 발언을 함부로 할 순 없다”며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많은 참여자가 동조했다. 한 투자자는 “진짜 정부에 가상화폐를 대량 매수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정부 장난에 시세가 오르락내리락 난리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가상화폐 저가 매수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가상화폐 규제 반대, 정부는 국민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13일 오후 11시 1분 기준 16만명이 참여했다. 이틀 전 6만여명에서 순식간에 2.5배 이상 증가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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