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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평창으로 시작된 남북 대화…4월이 첫 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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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열린 남북고위급회담 전체회의에서 기조발언을 통해 고위급 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은 물론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을 파견할 의향을 보였다. 사진은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배구 결승에서 한국을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연합뉴스


9일.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대화 분위기로 전환되는데 소요된 기간이다. 지난해 한반도를 뒤덮던 전쟁의 먹구름과 비교해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북한의 완전한 파괴”, “화염과 분노” 등 강도 높은 위협 발언을 쏟아냈다. 전략폭격기 B-1B 전개, 핵추진항공모함 3척 한반도 동시 투입 등 무력시위로 이어갔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2~3월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앞두고 급속히 바뀌었다. 지난 1일 은색 양복에 뿔테 안경을 쓰고 등장한 김 위원장은 여유로운 태도로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며 대표단 파견과 대화를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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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평화의 집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과 전체회의 시작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그로부터 8일 후인 지난 9일, 남북은 판문점에서 고위급 회담을 갖고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대표단 파견, 군사당국 회담 개최, 다양한 분야에서의 대화 등에 합의했다. 2년여만에 만난 남북이지만 회담 당일 공동보도문을 낼 정도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돌파구가 열린 남북 대화 기조가 오랫동안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올림픽 직후인 4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의 대응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평창’ 바라보는 남북의 동상이몽

남북 모두 평창올림픽을 앞세우며 대화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속내는 서로 다르다. 철저한 계산과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대외 전략의 일환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위에 있다”며 핵무력을 과시하는 한편 평창올림픽을 앞세워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발사 성공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는 전략목표를 달성한 북한은 대외관계를 주도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얻었다. 여기에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평화적 개최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국제 스포츠 행사이자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을 통해 국제사회의 고강도 압박과 제재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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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밤 청와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를 두고 미국과의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고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먼저 시도하는 통남봉미(通南封美)라는 관측이 많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기 바란다”는 발언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의 대치국면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남북관계가 호전되어 대화국면에 접어들면 북한은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는다.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군사적 옵션을 사용하기 어렵고, 이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리스크가 일부 감소함을 뜻한다. 북한은 지난해 미군 전략폭격기와 핵추진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잇따른 한반도 전개에 위기의식을 품었다. 지난해 말 평양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던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동방연구소 소장은 10일 38노스 기고문에서 “북한 관리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작전 전투태세를 갖추려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대외 리스크로 인해 지난해 말 열릴 예정이었던 만리마선구자대회를 열지 못하는 등 내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북한 입장에서 오는 9월 정권 창건 70주년은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중요한 정치행사다. 이를 위해서는 미군 전략폭격기와 핵추진항공모함이 북한 영토 바로 앞까지 진출하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그 성과를 북미 대화로 연결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0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10일 통화 내용을 설명하면서 “양 정상은 (통화에서) 남북대화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넘어 자연스럽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북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고 밝혔다. 집권 후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했으나 북미 대결 구도 속에서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던 문재인정부로서는 평창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 대화를 활성화해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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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해군 핵추진항공모함 칼빈슨호가 6일 이지스구축함과 순양함의 호위를 받으며 서태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 제공


◆착각은 오래 가지 않는다…대화 동력 유지 절실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제안한 고위급회담에 대해 2년여만에 판문점 연락 채널을 복원하고 우리측의 제의를 수정 없이 수용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후속 회담으로 이어지는 동력을 확보했다.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긍정적인 기류가 유지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잠복해있던 남북 간 현안들이 올림픽이 끝나는 3월 말부터 수면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군사당국 회담은 말 그대로 ‘지뢰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암초가 많다. 북한이 제시할 ‘올림픽 청구서’로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꼽힌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평화적 개최에 협조했으니 9월 9일 정권 수립 70주년을 위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경우 우리 측으로서는 대응이 쉽지 않다. 한미 군 당국은 4~8월 시뮬레이션 훈련인 키리졸브와 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 상륙훈련인 쌍룡훈련, 컴퓨터 워게임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4월부터 시작될 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연습을 ‘북침 핵전쟁 연습’으로 규정하는 북한으로서는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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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소속 CH-47 수송헬기가 한국 육군 장병들을 태우고 항공강습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육군 제공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진행중인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도 청구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측의 확성기 방송에 맞서 북한도 대남 방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측 방송에 비해 출력이 떨어지는데다 전력 사정도 넉넉지 않은 북한 입장에서는 방송을 장기간 진행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B-1B 등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로서는 북한이 이같은 요구를 해올 경우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평창올림픽 이후로 연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중단은 어렵다.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일정 재조정’이라고 표현하며 중단 가능성에 선을 그엇다. 국민 여론도 부정적이다. SBS와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11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미 군사훈련을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남북대화 일정과 별개로 재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70%에 달했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재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도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없다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군사회담이 열리면 우리보다 북한이 할 말이 많다. 북한이 요구할 것이 많고 우린 해줘야할게 많은데 이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대화가 한계에 부딪히거나 냉각되면 한반도는 대치 국면으로 급속히 전환될 위험이 있다. 미국은 핵추진항공모함 칼빈슨호를 최근 서태평양으로 출동시킨데 이어 스텔스 폭격기 B-2를 괌에 배치해 언제든 대북 압박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북한이 자체적인 스케줄에 따라 9월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축포’로 지난해부터 거론되던 인공위성 발사나 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이 강화될 수밖에 없어 대화 동력은 상실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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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 중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5사단 장병이 10일 한파 속에도 남방한계선 경계시설물을 점검하고 있다. 연천=연합뉴스


평창올림픽은 우리 정부에 있어 기회이자 위기다. 북미 대화를 주선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 ‘한반도 운전자론’을 실현시킬 기회이기도 하지만, 대화 동력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군사적 대치 국면이 악화될 수 있다. 2015년 8월 비무장지대 포격도발 직후 조성된 남북 긴장 완화 기류가 4차 핵실험으로 인해 출구없는 대치로 바뀌기까지는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을 최대한 활용해 대화 동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평창올림픽에 참석하면 우리 정부는 최룡해 북한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을 오게 해서 둘을 만나게 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우리 몫이다. 가만있다고 일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우리 정부가 잘 잡아서 북미 간 최고위급들이 만나 얘기를 나누게 하면 좋지 않겠는가”(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라는 지적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대화 국면을 뒤흔들 위기가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100일 남짓. 이 시간을 우리 정부가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결정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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