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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기고] 이제는 금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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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서울경제

2018년 새해 화두는 금융이어야 한다. 금융은 동전의 양면처럼 정부가 실현하려는 중소기업 중심 경제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금융은 그동안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국내 은행의 총자산은 2,390조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5% 증가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고용 창출 능력 약화, 부가가치 저조, 금융 포용성 부족, 금융 신뢰도 저하 등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금융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은행업은 자본비율, 건전성, 유동성, 공시의무, 감사·감독 기준, 소비자 보호 등 지켜야 할 엄격한 규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본비율을 지키면서 자산을 늘리는 방법은 자본금을 늘리거나 위험가중치가 낮은 자산을 취득하는 길뿐이다. 총자산순이익률(ROA) 0.5% 수준에서 자본금을 늘리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결국 위험가중치가 낮은 보증·담보 대출을 늘려야 한다. 실제로 국내 은행의 최근 3년간의 총대출 순증을 보면 부동산 담보 비중이 높은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이 85%를 차지한다. 또 은행은 외화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라는 유동성 규제를 지켜야 한다. 한 달 이내 순현금 유출을 커버하기 위해 한 달 이내 고유동성 자산(현금·국채·지급준비금 등)을 100% 보유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은행들은 수익도 없는 고유동성 자산을 30조~40조원씩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고 시장에서는 은행들이 안전한 장사만 한다느니 탐욕이라느니 비난을 한다.

물론 은행도 반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는커녕 안에서 과도한 대출 경쟁을 벌여왔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은행 총대출 증가율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29%의 두 배에 달하고 GDP 대비 은행 대출의 비중은 99%를 넘고 있다. 매년 100조원 내외의 은행 대출이 순증해왔지만 이 자금이 부동산 담보가치 상승에 기반을 두거나 부동산 관련 대출로 흘러간 점을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직전 금융의 공급과잉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정부가 이를 조기에 인식해 대책을 쏟아내고 있고 금융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 은행들의 경영성과가 좋아지고 있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2017년 말 주요 시중은행의 ROA가 0.7%로 높아지고 자본비율도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곧 중소기업 중심 경제가 정착하도록 플랫폼 역할을 하기 딱 좋은 타이밍을 의미한다. 정부가 일자리에 집중할 때 은행은 생산과 투자가 있는 일거리에 돈이 들어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2018년 금융권의 화두가 디지털과 혁신·글로벌이라지만 이는 각각 별개가 아니다. 기업은 줄곧 디지털과 혁신으로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 않은가. 자칫 우리의 디지털·혁신이 편리성만 강조하다 가상화폐 투기나 해외 펀드,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비생산적 금융을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이를 바로잡는 것도 금융의 역할이다. 금융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실물경제를 무시한 비생산적 금융의 성장, 그것은 공포를 부를 뿐이다.

고대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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