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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액체방울 맘대로 조종하는 ‘도깨비 계면활성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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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자기와 빛으로 방울 모양·이동 조절

약물 전달·세포 배양 등 응용 폭 넓어

IBS 국제혼성 연구팀 <네이처>에 논문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학공장”


한겨레

액체방울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국제혼성 연구팀이 액체방울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나노 계면활성제를 개발했다. 약물 전달이나 액체방울내 세포 배양 등 생물·화학과 제약 분야의 차세대 재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연구원은 10일 “첨단연성물질연구단의 바르토슈 그르지보프스키 그룹리더 연구팀이 다양한 자극으로 액체방울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는, 나노입자로 된 계면활성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10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 연구팀은 울산과기대(UNIST) 자연과학부 특훈교수로 한국에 와 있는 그르지보프스키 폴란드과학원 교수(교신저자)와 중국 출신의 양지지에·웨이징징 연구원(공동 제1저자), 러시아 출신의 야로스와브 소볼레브 연구위원(제2저자) 등 국제 혼성으로 구성됐다.

연구팀은 차세대 의학재료로 주목받고 있는 계면활성제의 활용도를 높일 방법을 찾아왔다. 계면활성제는 비누·세제·샴푸 등 생활용품에도 널리 쓰이는 화학물질로, 한 분자 안에 물에 잘 붙는 부분(친수성)과 기름에 잘 붙는 부분(소수성)이 함께 존재한다. 기름과 물이 섞여 있을 때 계면활성제를 사용하면 물만 액체방울 형태로 분리해낼 수 있다. 계면활성제가 지니고 있는 물질 분리(운반) 기능을 활용하면 약물 등 특정물질 전달이 가능하다. 특히 액체방울을 조절하는 기술은 질병 진단과 신약 개발 등 제약·화학 연구 전반에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액체방울 조절 기술은 분자 계면활성제에 의존해 두 가지 이상의 자극에 반응하도록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계면활성제로 둘러싸인 액체방울을 외부 자극에 반응하도록 분자를 설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온도에 따라 변하거나 자기장으로 조종하고 빛과 산화-환원 반응 등에 반응하는 계면활성제는 개발됐지만 다양한 자극에 동시에 반응하는 계면활성제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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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주위로 모이는 나노 계면활성제에 싸인 액체방울. a. 나노 계면활성제로 둘러싸인 액체방울이 레이저를 비춘 지점으로 모인다. 약 8초 뒤에는 육각형을 이루며 압축적으로 조립된다. 액체방울이 레이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은, 나노입자가 빛을 흡수하고 액체를 데워 만드는 대류 때문이다. b. 대류현상으로 인해 액체방울이 회전하는데 맞닿은 액체방울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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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물이 붙는 친수성 부분에 6㎚(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금(Au) 나노입자를, 기름이 붙는 소수성 부분에는 12㎚ 크기의 산화철(Fe₃O₄) 나노입자를 사용해 눈사람 모양의 나노 계면활성제를 만들었다. 이 나노 계면활성제는 자기장과 전기장, 빛에 모두 반응하고, 계면활성제를 둘러싸고 있는 액체방울은 이런 자극에 따라 이동이나 조립, 회전, 결합 등의 움직임을 보였다.

연구팀은 우선 자기장 반응 실험을 위해 물과 기름이 섞여 있는 수조에 자성을 띤 나노 계면활성제를 넣고 자석을 갖다 댔다. 그러자 계면활성제에 둘러싸인 물방울들이 자석에 따라 움직였다. 연구팀은 “자성을 띤 계면활성제(금 나노입자+산화철)와 자성이 없는 계면활성제(금 나노입자+황화납 나노입자)를 일정 비율로 섞으면 액체방울의 자성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다음 레이저 빔을 사용해 빛에 대한 반응을 연구했다. 나노 계면활성제에 둘러싸인 액체방울에 레이저 빔을 쬐면 액체방울들이 회전을 하면서 육각형 구조를 만들었다. 레이저 빔을 끄면 액체방울들은 흩어졌다. 이를 활용해 레이저를 쏘는 부분에 따라 회전 속도와 회전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짧은 전기장을 가해 전기가 흐르자 액체방울들이 통로를 만들어 서로 합쳐지며 액체를 교환하는 것을 관찰해냈다. 나노 계면활성제가 순간적으로 위아래로 분리되면서 가운데 빈틈으로 통로가 생기고, 이 결합 과정에서 액체방울들은 타원형 모양이 생겨났다. 이 특성을 이용하면 전기장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특수한 모양의 액체방울을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나노 계면활성제가 살아 있는 세포를 액체방울에 가둬 배양하거나 세포내 효소 반응을 액체방울로 재현하는 등 특수한 환경이 필요한 제약·생물학·의학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르지보프스키 그룹리더는 “나노 계면활성제로 만들어진 액체방울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화학공장이라 할 수 있다. 액체방울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을 조절할 수 있어 앞으로 응용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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