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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매경이 만난 사람]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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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에 선 로스쿨 (下) ◆

매일경제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 9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났다. 그는 로스쿨 도입 10주년을 앞두고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여 정원제 시험이 아닌 자격시험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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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한 경쟁 시대로 바뀌었는데 변호사는 왜 실업자가 되면 안 됩니까. 변호사 자격증은 국가가 취업을 보장해주는 증명서가 아닙니다."

사법시험이 올해부터 전격 폐지되면서 로스쿨은 국내 유일의 법조인 양성 기관이 됐다. 그만큼 사회적 중요성과 위상도 격상됐다. 그러나 현재 로스쿨은 당초 도입 취지와는 달리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한 '입시학원'으로 전락해버렸다. 도입 10년을 앞둔 로스쿨 제도가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선 것이다.

9일 매일경제는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한양대 로스쿨 원장)을 만났다. 로스쿨이 도입 취지에 맞게 제 기능과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날 제7회 변호사시험이 시작됐다.

이 이사장은 "개천에서 용이 못 난다"며 로스쿨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어림없는 소리"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되레 "요즘 로스쿨 졸업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딴다고 '용'이 됐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이사장은 "개업해도 사무실 월세조차 못 내는 변호사가 어딜 봐서 '용'이냐"며 실소를 터뜨렸다.

과거 300명을 뽑던 사법시험은 국가가 법률 전문 공무원을 뽑는 일종의 공무원시험이었다. 사법시험 합격자는 사실상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것이어서 국가가 취업과 월급을 보장해줬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의 변호사시험은 공무원시험이 아니다. 그저 자격증을 따는 시험에 불과하다. 자격증을 딴 것은 출발선에 서는 것일 뿐, 본격적인 달리기 경주에서 앞서나가고 뒤처지고, 또는 포기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능력과 선택에 달린 것이라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변호사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인정받으면 부를 축적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수도 있는 게 당연한 현실"이라며 "시험에 붙는 것으로 취업과 소득이 보장되고 상위계층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대판 음서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합격자 수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합격자는 매년 '1000명'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매년 응시자의 60%는 합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맞선다.

이 이사장은 "대한변협이 주장하는 1000명이라는 숫자는 '송무' 영역에만 한정해 산출한 숫자"라며 "이제 변호사는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공공기관, 국제기구 등 다양한 곳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숫자가 나와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 법무팀 같은 곳에 법학과 출신이 갔는데, 그런 자리를 변호사가 채워야 한다"며 "세상이 달라진 만큼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현재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가 '지나치게 낮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합격률이 50%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변호사시험이 정원제 시험이 됐다는 얘기"라며 "로스쿨 도입 취지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인데 현재로선 시험으로 법조인을 뽑는 기존 사법시험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로스쿨에 입학한 것 자체를 일종의 정원제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보고 로스쿨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사람은 변호사 자격증을 가질 수 있도록 자격시험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회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사람이 법률지식과 실무능력을 더해 전문 변호사가 되도록 하려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현재로선 사회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이 오히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가 쉽지 않아 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며 "머리 회전이 빠르고 '시험'에 능숙한 학부 졸업생이 변호사시험에서 월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놨다"고 말했다.

'금수저 돈스쿨'에 대한 해명도 빼놓지 않았다. 이 이사장은 "가난한 사람은 로스쿨을 다닐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틀린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로스쿨 등록금이 국립대는 한 학기 평균 550만원, 사립대는 850만원 정도다. 여기에 장학금이 30%가량 지급되는 것을 감안해 장학금을 빼고 계산하면 국립대는 평균 400만원, 사립대는 60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며 "이는 사립대 학부 등록금과 유사하거나 경영대학원 같은 특수대학원 등록금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법시험은 돈 없어도 본다고 얘기하지만 시험 응시에만 돈이 들지 않는 것이지, 돈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며 "옛날에는 절에서 공부해 붙는 사례도 있었지만 최근 사법시험생은 대부분 학원에 다니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고시원비를 내면서 공부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개별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전체 로스쿨의 변호사시험 합격률만 공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개별 로스쿨의 합격률 공개는 곧바로 로스쿨의 서열화로 이어진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 이사장은 "로스쿨이 서열화하면 결과적으로 각 로스쿨은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등위를 올리려고 노력할 텐데, 그 방법은 결국 학생의 시험 합격률을 높이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는 또한 로스쿨이 입시학원처럼 운영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방 로스쿨이 불리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방 로스쿨은 지방 인재 육성법에 따라 지역 인재를 20%가량 뽑게 돼 있다"며 "이들은 우대받아 뽑힌 사람인 만큼 일반전형으로 뽑힌 사람과 동일한 시험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하면 합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 로스쿨의 합격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어 학생들의 기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끝으로 이 이사장은 "변호사 수임료를 여전히 건당 300만원, 500만원으로 부르는 곳이 많다. 과거에는 더했지만 아직도 변호사에게 접근하기가 어렵다"며 "변호사가 많아지면 동네 의원을 찾아가듯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상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쿨 작년 500억 적자…'빌려주고 나중에 받는' 장학제도로 바꿔야

'100명 정원' 설계한 학교 '40명만 인가' 적자 불가피
美·日처럼 많이 뽑아야 우수한 교수 더 많이 채용

"현재의 장학 제도는 학교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대학의 학부나 의학전문대학원·경영전문대학원과 형평성을 고려해 장학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형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은 로스쿨의 현재 장학 제도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 로스쿨생에게 욕먹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해야겠다"며 '무이자 대여 장학금' 제도를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무이자 대여 장학금' 제도는 로스쿨 졸업생이 취업 후 일정 기간 후에 원금만 분할상환하는 방식을 말한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되, 그 외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빌려주기만' 하자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 법률 전문가가 되겠다며 선택하는 곳"이라며 "특별자격증을 따러 오는 사람들에게 왜 국가나 사학이 장학금을 지급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이처럼 장학금 제도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한 것은 최근 로스쿨이 겪고 있는 재정난 때문이다.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016년 교육부가 로스쿨로 하여금 등록금을 15% 인하(사립) 또는 동결(국공립)하도록 한 후 국내 전체 로스쿨은 작년 약 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같은 재정 악화로 당초 등록금 총액의 43%가량을 장학금으로 제공하던 로스쿨은 교육부가 마련한 최저 기준선인 30% 수준으로 장학금을 줄여야만 했다.

이 이사장은 이 같은 로스쿨 적자의 원인으로 교육부의 '정원 규제'를 꼽았다. 그는 "처음에 로스쿨이 인가 신청을 할 때 40명을 바라보고 한 곳은 없다. 적어도 100명, 큰 곳은 150명을 바라보고 설계하고 지원했는데 교육부는 40명밖에 인가해주지 않은 곳도 있다"며 "로스쿨은 100~150명을 기준으로 건물을 짓고 교수를 채용해놨는데, 교육부는 훨씬 적은 정원을 인가해주고선 이를 유지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특성화 로스쿨을 만들라고 해서 특정 분야 전문 교수들을 많이 뽑고 기자재를 구매했는데 이를 상황에 맞게 줄이지도 못하게 하니 비용만 늘어난다"며 "로스쿨의 이 같은 재정난은 결국 교육의 질 저하와 장학금 혜택 축소로 이어져 학생들이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장은 해외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로스쿨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재정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한국 로스쿨은 인가주의 방식을 채택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준칙주의를 채택했다"며 "우리는 교육부에서 인가해준 정원 이상을 뽑지 못하게 하는 반면, 미국·일본은 교원을 많이 뽑는 등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학생을 많이 뽑을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He is…

△1955년 충남 보령 출생 △한양대 법과대학 학사, 한양대 법학 석사, 독일 괴팅겐대 법학 박사 △1990년 한양대 법대 교수 △2009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2013년 한국비교사법학회장 △2014년 한국상사법학회장 △2015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 △2016년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2017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김효혜 기자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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