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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가족 같은 사회’를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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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먹고 살 가망 없이, 또 정신 함양을 위한 교육 없이 두는 건, 그 아이와 사회에게 도덕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부모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중략) 국가는 빈곤가정이 학비를 대도록 돕고, 필요하다면 전액 지원해야 한다.”

J. S. 밀이 『자유론』(1859)에서 한 말이다. 정치적·사상적·경제적 자유주의의 대표사상가가 국가의 가정사 간섭과 교육 지원을 주장하다니? 밀에 따르면,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다. “아이는 부모의 일부가 아닌 개인”이며, 따라서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거나 양육의무를 방기하는 건 다른 개인을 해치는 게 되니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부득이 의무를 다할 수 없으면 국가가 분담해야 한다. 아이가 인간답게 살 기본적 기회를 가져야 성인이 되어 참된 자유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밀 『자유론』(왼쪽),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하지만 국가가 정책 전반에서 퍼터널리즘(아버지로서의 선의의 간섭)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밀은 경고했다. 자유의 기본원칙은 ‘너에게 좋은 일’이라도 성인인 상대가 원치 않으면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버이 같은 나라님’의 통제를 당연시하는 유교 전통이 아직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이 원칙이 종종 무시되지만 말이다. 밀은 아무리 현명한 정부라도 결코 완전할 수 없기에 개개인의 자유에 맡겨 다양성이 꽃피게 해야 한다고 봤다. 다만 각 가족의 부모 역시 불완전한 존재기에 그들이 아이에게 해가 될 때는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즉 밀이 원한 건 ‘가족 같은 사회’가 아니라 ‘가족과 짐을 나눠지는 사회’이며 ‘사회로 열린 가족’이었다.

최근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다. 가족이기주의는 강하면서 가족 내 폭력, 자율성 억압 등에는 둔감한 우리 현실을 다뤘다. 그 원인으로 저자는 국가가 사회 안전망 없이 고속성장을 추진하면서 교육, 돌봄 등 사회가 보장했어야 할 일을 가족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믿을 건 가족뿐”이 된 탓이라 본다. 게다가 직장 등 여러 사회집단이 그 가족주의를 받아들여 오지랖, 헌신 강요, 권위주의가 성행하며 그렇다고 사회보장을 해주진 않는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가족과 짐을 나눠지는 사회”다. 밀의 견해와 상통하지 않은가.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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