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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인사이드칼럼] 당신 데이터의 3가지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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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연히 들른 초등학교 교정은 충격이었다. 기다랗던 교사와 커다랗던 교실, 널찍한 운동장과 큼직한 축구 골대는 더 이상 없다. 이렇게 작고 좁은 곳이었다니. 크고 넓었던, 그리고 어린 마음에 온 세상과도 같았던 학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초등학교 시절 주인공의 눈에 '엄석대'는 난공불락의 영웅이다. 세월이 흐른 후 주인공은 우연히 엄석대의 일그러진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고 과거와 현재의 엄청난 괴리감을 느끼며 소설은 끝난다.

우리네 일생은 경험을 축적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를 점철하고 현재를 대응하게 하며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이 경험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기업이 애지중지하는 'forecast'라는 단어는 자사가 만들어 내는 상품과 서비스를 시장과 고객이 얼마나 구매할 것인지를 예상하는 '수요예측'의 뜻으로, 현대 기업경영과 업무의 첫 단추이자 단초인 셈이다. 이 단어의 영어 정의는 'predict future using past data'.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한다고 한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모두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듯 소중한 데이터를 사용할 때 낭패를 볼 수 있는 3가지 경우가 있다. 먼저, 과거의 데이터가 완전할까? 세상의 다양한 변화와 변화의 다양한 요인을 다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데이터일까?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고, '위대한 기업에는 위대한 비전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인을 얻은 자는 다 용감무쌍할까? 비전만 위대하게 제창하면 위대한 기업이 될까? 제한된 경험으로 확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초등학교 때까지 제한된 데이터를 가지고 학교와 교정을, 그리고 영웅을 바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초등학생을 지나 상당한 연령과 경력을 가진 이들에게도 오류는 발생한다. 이는 오랜 충분한 경험 데이터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데이터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는 얘기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 하나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인해 다른 특성까지 왜곡해서 판단하는 '후광 효과', 복잡한 상황을 실제보다 단순한 것으로 축약하는 '환원적 편견'. 모두 올바른 데이터를 가지고 올바르지 못하게 프로세스하는 인간의 인지 성향을 일컫는 용어다. 과거의 성공했던 추억, 그 추억의 주인공인 자신, 그 자신이 행했던 판단의 후광에 도취하여 편향과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경영자와 어르신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세 번째 경우. 충분히 데이터를 모으고 열심히 스스로를 냉철하게 담금질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 아무리 엄청난 빅데이터가 우리 손에 있고 똑똑한 인공지능이 우리 곁에 있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경우이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는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경우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혁명적으로 세상이 변하고 사고와 생활방식이 변화하며 가치와 가치관이 변동하는 작금이다. 과연 과거의 경험과 충분한 데이터가 지금까지처럼 요긴할 것인가 물어보아야 한다. 새로운 해의 경영과 사업전략 또는 인생전략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진정으로 곱씹어 보아야 한다.

대다수의 성장소설은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자아를 회상하며 훌쩍이나 변해버린 자아를 느끼고, 과거의 자아로 찾아가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현재의 자아와 과거의 자아를 연결하며 동질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골격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성장소설의 대명사 격인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문구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온 순간 더 이상 새는 알이 아니며, 알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누구도 일그러진 2018년을 원하지 않는다. 그간의 데이터와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지 않겠는가.

[임춘성 객원논설위원·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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