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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단독] 제일의료재단 노사 ‘경영권 승계’ 싸고 마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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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등기이사 5→10명 증원 / 노조 “회의 사실 사전에 안 알려”… 결의사항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세계일보

범삼성가가 운영 중인 비영리 의료재단 이사장이 직원들에겐 ‘상생’하자며 임금 반납을 종용하고 정작 막후에선 비밀리에 편법을 동원, 경영권을 아들에게 넘기려는 정황이 확인됐다. 이를 뒤늦게 안 직원들은 “경영능력이 부족한 이사장 탓에 병원이 1000억원대 빚더미에 올랐는데 또다시 검증되지 않은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서울 중구 제일병원 노조는 17일 제일의료재단을 상대로 ‘이사회 결의사항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고 밝혔다. 복수의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1월21일 열린 문제의 이사회 결의사항은 등기이사 정원을 5명에서 1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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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병원 노사간 맺은 단체협약. 해당 조항에 따르면 병원 측은 이사회를 열기 전 개회 일시와 주요 안건 등을 직원들에게 사전 공지해야 한다.


비영리법인 규정상 가족,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은 이사회 정원의 5분의 1만 등기이사에 오를 수 있다. 노조 측은 “당연직으로 올라있는 이사장이 장차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의도로 이사회 정원을 늘리려는 것”이라며 “단체협약을 깨고 이사회를 비밀리에 연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재직 중인 이사장은 설립자 고 이동희 박사(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촌 형)의 장남 이재곤씨다.

해당 병원 단체협약에 따르면 이사회 소집 시 일정과 주요 안건 등을 노조에 사전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사회 참석 대상자들에겐 사전 공지했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이사회 일정을 등기이사 외 직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사회 정원을 늘려 보다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함”이라고 해명했다.

정작 노조가 제기한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것은 이재곤 이사장이다. 그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사회 개최 사실을 비밀에 부친 이유에 대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내 “건강이 좋지 않아 경영권을 넘기려고 아내를 상임이사로 선임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원무팀에 근무 중인) 아들이 자질이 되는지 지켜본 뒤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취재 결과 재단의 이사선임 절차는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중구보건소가 지난 8일 재단에 보낸 공문 ‘임원선임보고 처리 알림’에 따르면 이 이사장의 아내 김모씨를 포함한 5명이 이사로 추가 선임됐다. 이에 전·현직 병원 관계자들은 “평생 주부로 살아오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적이 없는 김씨, 나아가 그 아들에게 어떻게 병원을 맡길 수 있느냐”며 격앙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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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경영상황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병원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병원의 금융채무는 861억여원이다. 퇴직급여충당금 등 기타 부채를 합하면 병원 빚은 1000억원 이상이다.

노조 관계자는 “존폐의 갈림길에 선 병원 측이 의사를 제외한 전 직원에게 임금의 20%, 정기상여금의 300%를 2년간 반납해달라고 호소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한 게 불과 6개월 전이었다”며 “그 조건으로 ‘경영상황을 직원들에게 성실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럴 수 있느냐”며 허탈해했다.

노조 측 소송대리인 허윤 변호사는 “이사회 결의가 노사 간 합의로 체결된 단협을 위반했다면 그 결의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청 관계자도 “이사회가 단협을 어겼다면 노동심의위원회를 열어 해당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하는 행정 조처를 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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