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1 (화)

[김기자의 현장+] 또 눈 온다는데 사라진 제설도구…"쓴 뒤 꼭 갖다 두세요"

댓글 4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부 시민은 제설 도구를 가져가 / 텅텅 빈 제설 도구함 / 눈만 오면 사라지는 제설 도구(넉가래, 빗자루, 눈삽) / 제설 도구함에는 쓰레기로 잔뜩 / 제설 도구는 훼손된 채 방치

세계일보

지난 6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남영역 인근 한 도로변에 설치된 한 제설 도구함에는 넉가래 3개와 삽 2개가 비치돼 있다.(왼쪽) 6일이 지난 12일 오후 같은 제설 도구함에는 삽 1개만 남아 있다.(오른쪽)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비치돼 있었다.


“온전히 남아 있겠어요. 쓴 뒤 갖다 두면 다음 사람도 쓸 수 있을 텐데…. 왜 가져가는지 쯧쯧쯧. 급할 때나 정작 필요할 사람은 없어서 못 써요. 또 눈이 온다는데…. 제설제(염화칼슘·모래주머니)야 써서 없어진다고 하지만 삽이나 빗자루는 있어야지. 그걸 가져가면 어떡하나?”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보다 춥다는 올겨울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호수가 얼어붙고 바닷물까지 고드름이 생기는 등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평년보다 7도 이상 떨어지고 영하 10도를 밑도는 초겨울 한파에 큰 호수까지 꽁꽁 얼어붙었다. 두꺼운 외투나 모자나 장갑 등 방한용품으로 중무장해도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초겨울 한파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볕이 잘 들지 않는 이면도로와 골목길은 빙판길 되기 일쑤다.

지난 6일부터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남, 성동, 광진, 중구, 용산 등 설치된 제설 도구함 23곳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이 중에 16곳이 없어지거나 훼손된 도구와 쓰레기만 가득 쌓인 채 방치되고 있었다.

세계일보

지난 14일 성동구 독서당로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제설용 눈삽 1개만 남아 있다.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비치돼 있었다.


서울시가 올해 첫 시범적으로 설치한 제설 도구함에는 넉가래 3개, 빗자루 3개, 눈삽 3개가 들어 있어야 한다. 곳곳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을 열어봤다. 도구는 없어지거나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넉가래와 눈 삽 같은 도구는 없어지고 제설제만 있는가 하면 일부 제설함은 포대가 찢긴 상태로 있었다.

제설도구나 제설제(염화칼슘·모래)를 비치해 눈이 내리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설 도구함에는 폭설에 대비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삽과 빗자루 등의 도구가 항상 들어있어야 한다. 쓰레기통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쓰레기로 잔뜩 채워져 있는 제설 도구함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성동구 한 관계자는 “바쁘시다 보니깐 제설을 하고 잊고 계신 분도 있다. 가져가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관리에 어려운 점이 있다. 지속적으로 관리는 하고 있지만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 눈 예보가 있을 때나 관리가 필요할 때 채우고 있다. 앞으로 더 지속해서 채워 넣겠다”고 했다. 이어 “일부 시민들이 가져가셔도 자기 건물만 치우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기 마당만 하는 것이 아니다. 건물 앞 도로도 청소도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을 위해 설치된 제설 도구는 하루가 다르게 없어지고 있었다.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제설작업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지만, 일부 시민들이 제설 도구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눈삽이 없으면 염화칼슘과 모래를 동시에 섞어서 뿌리기가 힘들다. 눈이 내렸을 때 시민들이 자유롭게 제설작업을 할 수 있도록 제설 도구가 온전히 있어야 하지만 현장 취재결과 그렇지 못했다. 용산구 주민 김모(56·남) 씨는 “개인적으로 가져가시는 시민을 종종 본다. 뭐라고 말은 못 하지만, 집에 쌓아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밤사이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치우느라 온종일 고생만 한 것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지난 14일 서울 광진구 동일로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넉가래 2개, 빗자루 3개, 눈 삽 3개기 비치돼 있다. 광진구청 한 관계자는 “수시로 점검·관리하고 있다. 구민들과 많은 대화로 변화를 이끌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설제와 도구함 관리는 각 지자체가 맡고 있다. 서울시가 ‘주민 자율 참여를 위한 무료 제설도구함 설치·운영’ 시범 사업으로 총 5천 5백만 원을 투입했다. 자치구당 10곳 비치할 수 있도록 제설 도구를 일괄 구매해 지원했다. 광진구는 자체 예산을 들어 73곳을 추가 설치했다. 제설 도구함은 총 333개소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구성됐다. 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 통해 버스정류장, 지하철 역사 주변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제설 도구함에는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제자리에 놓아주시기 바랍니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제설 도구에도 분실방지를 위해 ‘공공재산’임을 알리는 문구 부착돼 있지만, 곳곳에 설치된 제설 도구는 없어지거나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세계일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 호텔 입구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각종 쓰레기와 훼손된 채 방치된 넉가래, 삽 1개가 들어 있다.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비치돼 있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 호텔 입구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을 열어봤다. 부러진 넉가래와 눈삽이 쓰레기와 함께 들어 있었다. 수방·제설제 함에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중구 남산순환도로와 인근 주택가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곳곳에 쌓여 있다. 좁은 골목길이나 볕이 잘 들지 않는 남산 순환도로 경우에는 언제든지 제설 작업이 필수. 주민들이 제설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제설함이나 제설도구함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인근 주민 이 모(45·남)씨 “설치 됐는지 몰랐다. 하지만, 공공물품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어 “여기 설치된 이유가 비탈길이고 눈이 오면 얼어붙기 때문에 인 것 같다. 주민들이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가는 가는 모습도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

지난 14일 서울 남산순환도로 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1개와 눈삽 2개가 비치돼 있다. 제설함 주변에는 훼손된 채 방치된 제설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제설 도구함에는 빗자루, 넉가래, 눈삽 각 3개씩 비치돼 있었다.


용산구 한 관계자는 “미리 채워놓고 있다. 채워 넣으면 그다음 날 없어지고 해서 눈 예보가 있거나, 민원이 접수된 곳부터 순차적으로 채워 넣고 있다”며 “홍보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여러 시민이 쓸 수 있도록 반납을 부탁드린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시민분들이 제설 도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올해 첫 시범적으로 설치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기존도 제설함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제설제뿐만 제설 도구를 넣어 두고 있지만, 챙겨 가시는 시민들도 있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많은 것 같다. 공공물품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