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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Why] 교수님의 전화 "결석한 학생, 거기서 진료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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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수업 빼먹으려고 진료확인서 떼

진료실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얼마나 아픈지 가늠하는데

"여태까지 누워…" 허튼 말

예전엔 개근상이 자랑이었는데…

얼마 전 병원 근처 대학교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심 강연 요청이라도 하려는 것 아닐까 하는 삿된 생각으로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은 한 학생 이름을 대면서 그가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은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진료 기록을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심한 기침 때문에 흉부 X레이를 찍어보니 결핵이 의심돼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 주면서 '결핵인지 아닌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학교나 사람 많은 곳은 가지 말라'는 소견서를 써줬던 환자였다.

교수님은 그 학생이 공교롭게도 시험 기간에 내 소견서를 제출했기에 시험을 치르지 못했고 혹시라도 시험을 치르지 않으려고 편법을 동원한 게 아닌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했다. 통화 내내 교수님은 요즘 학생들이 가벼운 병에도 수업을 빼먹는다며 합법적 결석을 위한 가짜 처방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쩐지 근처 학교들에서 결석 사유 증명서류로 처방전이 아니라 발급에 돈이 드는 진료확인서를 요구한다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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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일과 시간에 진료를 받으면 거의 진료확인서를 요청한다. 정작 진찰을 해보면 '이 정도로 학교를 빠지나' 할 정도인데도 수업에 빠진다. 일과 시간에 오는 경우는 그래도 어딘가 아파서 왔겠거니 하지만 병원 문을 잠글 때쯤 온 학생이 특별히 아픈 것 같지 않으면 학교 빠진 핑계로 진료 기록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때 학생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여태까지 아파서 누워 있다가 왔어요." 이렇게 말하는 건 의사를 매우 허투루 본다는 뜻이다. 동네 의사의 내공으로는 진료실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환자가 얼마나 아픈지 대략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아프면 119라도 불러서 병원에 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 대개 딴청을 피운다. 그런 학생의 진료 기록에는 꼭 '진찰상 특이 소견은 없지만 환자 진술에 따라 치료한다'고 남겨 놓는다.

여학생들이 쓰는 생리 결석도 학교 빼먹을 수 있는 기회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생리통이 심하다는 학생에게 정말 생리 중인지 확인해보자고 할 수도 없고, 그저 환자 말을 믿고 치료하고 처방할 수밖에 없다. 통증이 너무 심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경우보다 무슨 이유든 수업에 빠지고 그 핑계를 병원에서 구하는구나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다.

학교에 결석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다. 부모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뻔한 편법으로 학교를 빠지는 걸 보면 요즘 부모들이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우는 것 아닌가 싶다. 살면서 내가 받은 상 중에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12년의 개근상이다. 아팠던 적이 없지 않았으나 수술받거나 전염병이 아니었기에 등교했다. 결석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이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쌍팔년도식 생각인지 모르지만, 개근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고 자기 관리를 잘했다는 의미가 있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에도 개근 이력에 가산점을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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