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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세상 속으로] 청와대 본관 로비 촛불집회 그림, 소장자에게 빌려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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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가 떼어낸 인왕실 벽 ‘통영항’

현 정부 출범 후 다시 꺼내 걸어

노태우 때 있었던 ‘행차도’ ‘수렵도’

YS 시절 권위적이라며 흰색 덧칠

가려져 있던 세종실 ‘일월곤륜도’

문 대통령이 커튼 걷어 다시 빛 봐

청와대 자체 보유 미술품 600여 점

“외국 국빈에 한국 문화 정수 홍보”

정권따라 운명 바뀐 청와대 미술품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진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 걸린 임옥상 화가의 ‘광장에, 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를 주제로 한 것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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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촛불집회를 형상화한 건데 완전히 우리 정부 정신에도 맞고 정말 좋아 보이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본관 로비에 설치된 그림을 가리키면서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에게 한 말이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시위를 그린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라는 작품이다. 캔버스(90.9㎝×72.7㎝) 78개가 모여 한쪽 벽면을 꽉 채웠다. 문 대통령은 “원래 그림을 구입한 사람이 당장 전시할 곳이 없어 창고에 보관할 계획이라고 하니 우리가 빌려 걸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며 “흔쾌히 좋다고 해 온 건데 (벽면 폭이) 좀 좁아 양옆에 일부는 다 못하고 (캔버스를) 서른 개 정도는 게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광장에, 서’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정부는 대통령 취향이나 정부 성격에 따라 다양한 그림들을 본관에 걸어 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본관은 외국 국빈들을 비롯한 외부인들이 대통령을 접견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문화의 정수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홍보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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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왕실에 걸린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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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본관의 그림들은 지난 5월 말부터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입주한 이후 그의 취향을 반영한 변화였다. 본관 인왕실에 걸려 있는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이 대표적이다. 인왕실에서 30~40명 규모의 소규모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문 대통령 너머로 보이는 코발트 블루 색깔의 바다 그림이다. 사실 통영항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인왕실 벽에 걸려 있었다. 2006년 당시 91세의 전 화백이 노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4개월에 걸쳐 완성한 그림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정부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이 그림은 문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 작업 등을 거쳐 다시 인왕실에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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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너머로 보이는 오병욱 작가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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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청와대를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너머로 보이는 그림도 새로 임대해 온 것이다. 오병욱 작가의 ‘바다’라는 작품으로 바닷물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모습이 잔잔하게 표현돼 있다.

청와대는 그림을 비롯한 미술품 등을 임대하거나 구매해 본관 등에 배치하고 있다. 계절 등 주기에 따라 그림을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주로 임대를 선호한다. 6개월 또는 1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작품 값의 0.5% 선을 임대료로 지불한다고 한다. 임옥상 작가의 ‘광장에, 서’의 경우엔 그러나 무료로 대여받은 것이라고 한다.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은 당시 1억5000만원을 주고 청와대가 구입했다. 당시 작품을 감정한 국립현대미술관이 2억3000만원으로 산정했으나 전 화백이 “청와대가 구입한다면 1억5000만원을 받아도 만족한다”며 가격을 낮췄다고 한다.

탈부착이 여의치 않은 벽화의 경우엔 대통령마다 극단적으로 ‘운명’이 엇갈린다. 덧칠되기도 하고 커튼으로 가려 놓기도 한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이 완공된 건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1년 9월. 당시 로비 왼편에는 ‘문(文)’을 상징하는 ‘행차도’가, 오른편에는 ‘무(武)’를 상징하는 ‘고구려 수렵도’가 그려져 있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들어선 김영삼 대통령이 주인이 된 뒤엔 흰색으로 칠했다. 행차도나 수렵도가 권위주의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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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완공 때부터 세종실에 그려진 송규태 화백의 ‘일월곤륜도’.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본관 세종실에 있던 한국 민화의 대가 송규태 화백의 ‘일월곤륜도’는 한동안 두꺼운 커튼에 가려져 있었다.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그려진 일월곤륜도를 조선시대에서는 어좌(御座)나 어진(御眞) 뒤에 뒀다. ‘왕의 그림’이란 뜻이다. 문민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커튼으로 가려 놓았다는 것이다. 일월곤륜도가 다시 ‘햇빛’을 본 건 문 대통령 덕분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세종실에서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면서 좋은 그림이 커튼에 가려져 있다며 직접 커튼을 걷었다. 그 뒤로 문 대통령이 세종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일월곤륜도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이에 비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세종실 다른 벽면엔 함께 걸려 있던 박영율 작가의 ‘일자곡선-합수’란 그림은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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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세종실에 걸린 박영율 작가의 ‘일자곡선-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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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1건이던 미술품 구입 건수가 2005년에는 12건으로 늘고, 2004년 1600만원에 불과하던 미술품 임차 지출이 2005년 9400만원으로 올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는 “미술품 임차료를 현실화했기 때문에 비용이 증가했다”고 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강요배·민정기 등 민중미술계 작가의 작품을 주로 구입했다.

문 대통령도 그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본관 접견실에서 유남석 헌법재판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문 대통령은 한쪽에 걸려 있던 민경갑 화백의 ‘장생’이란 수묵채색화를 가리키며 “그림 보고 나가야죠”라고 얘기한 일도 있다. 그림을 그린 민 화백이 유 재판관의 장인인 걸 염두에 둔 듯했다. 이 같은 취향은 아들 준용씨가 미디어아티스트이고 딸 다혜씨는 문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잠깐 일하는 등 가족 영향 때문일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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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접견실에 걸린 김보희 작가의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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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공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당시 김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의 환담이 이뤄진 본관 영부인 접견실에는 시내 한 갤러리로부터 대여해 온 김보희 작가의 ‘향하여’와 민화 작가 박무생 화백의 10폭 모란도가 설치돼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큐레이터가 김정숙 여사 일정 등을 담당하는 2부속비서관 소속으로 있다”고 말했다.

대여 형식이 아니라 청와대가 자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은 그림과 도자기 등을 포함해 600여 점이라고 한다. 현재 청와대 경내 미술품 목록을 도록으로 발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도록을 정비 중인데 하나하나 촬영하고 작가와 연대·경로 등을 파악하다 보니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S BOX] 오운정·침류각·석조여래좌상, 청와대 유형문화재도 3점
청와대 경내에는 3점의 서울시 유형문화재가 있다. 오운정(서울시 유형문화재 102호), 침류각(서울시 유형문화재 103호), 석조여래좌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 등이다. 그러나 모두 대통령 관저 인근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은 물론 청와대 직원이라 하더라도 손쉽게 관람하기는 어렵다. 종로구에서 관리한다.

오운정(五雲亭)은 청와대 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정자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만든 건물이다. ‘오운’이란 오색의 구름이란 뜻으로 별천지, 신선 세계 등을 상징한다. 오운정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면서 침류각과 함께 인근으로 이전됐다. 침류각(枕流閣)은 1900년대 초 전통가옥이다. ‘침류’는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석조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8세기께의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잘생긴 용모 덕에 ‘미남 부처’로도 불린다. 1929년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총독부 관저를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됐다. 침류각 뒤 샘터에 있다. 경주 지역에선 이 불상을 본래 장소인 경주시로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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