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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암호화폐 거품인가 혁신인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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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열쇠꾸러미와 아파트 디지털 도어록이 있다. 둘 중 어떤 것이 더 안전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네덜란드에서는 디지털 도어록보다는 열쇠가 더 안전하다고 여긴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안전에 열쇠보다 디지털 도어록이 더 어울린다고 느끼는 것 같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중 무엇이 더 안전한가는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문화와 제도,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서를 e메일로 보내면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팩스로만 받는 경우가 있다. e메일이 오히려 더 선명한 파일을 첨부할 수 있는데도 한사코 팩스로 문서를 받는다. 그래야 더 진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디지털을 받아들이는 역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보안과 아무 관계없는 문화면에서도 있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면 왠지 예의없어 보일까 봐 일부러 전화를 한다는 사람이 있다. e메일보다는 문자메시지가 더 격식있어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받는 쪽에서도 이런 느낌은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는 전화를 받아야 안심이 되고, 누구는 e메일이 근거가 남는다고 더 선호한다.

사람들은 수조원의 거래가 오가는 주식시장이나 은행에서 종이가 아닌 인터넷으로 거래 내역이 전산처리되는 것을 별로 의심하진 않는다. 은행에서 받은 이자를 1원 이하 단위까지 계산해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실제 은행이 코픽스 금리를 잘못 계산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심지어 북한이 농협을 해킹했다는 뉴스까지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인터넷으로 은행을 잘 이용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선거의 투·개표는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하다. CCTV와 참관인, 방송사의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고 경찰이 호위하고 있다 해도 그렇다. 과거에 민심을 조작하려 했던 기관들의 범죄를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자 투·개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법적인 요건은 되어 있지만, 유권자의 정서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도는 좀 다르다. 인도는 세계에서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나라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다(중국은 공산국가라서 제외). 인구 12억 명에 유권자만 8억 명이 넘는다. 인도에서는 비용 절약과 선거부정 방지를 목적으로 전자 투·개표를 도입했고,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쿠데타 한 번 겪지 않고 잘 써먹고 있다.

은행은 믿는 편이고 전자 투·개표는 의심스럽다면, 인공지능은 어떨까?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일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 사라질 것 같은 일자리를 위한 공부를 시키고 있다. 대리운전 시장은 3조원 규모에 약 20만 명의 대리기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운수사업자들은 대리운전은 받아들이면서 승차공유 같은 교통혁신 서비스는 결사반대 중이다.

알고 보면 디지털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자주 모순적이다. 보안 때문이라면서 보안에 가장 취약한 액티브엑스 프로그램을 덕지덕지 깔게 하는 은행이 그렇고, 최신 혁신기술을 연구하라면서 과제관리는 딱풀로 영수증을 붙여 제출하도록 하는 연구 평가기관들이 그렇다. 기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최근 비트코인은 단기과열에 따른 투기심리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기대심리가 뒤섞여 있다. 우려와 기대. 사람들이 진정 믿고 싶은 것은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일까? 아니면 자신이 투자한 전자화폐의 가격상승일까?

투명한 거래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암호화폐가 랜섬웨어 몸값 지불 수단으로 쓰이고, 보편적 금융수단이 아니라 극소수에 의해 독점된 자산이 되어 가는 것은 결국 인간의 문제다.

디지털 기술은 아무리 현란해도 기술일 뿐이다. 디지털 기술을 믿느냐 안 믿느냐, 두려워하느냐, 기대하느냐,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광기와 거품, 의심과 맹신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탐욕에 있기 때문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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