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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준 학교협동조합…‘더불어 사는 법’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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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10회 윤리적소비 공모전 ‘진심상’ 경기 용인시 현암고

학생·교사·학부모·지역 참여한 교육공동체 ‘두레바우’ 꾸려

매점 대신 북카페·소공연장 기능 더한 복합문화공간 만들어

“수평적 관계 경험, 인간적 존중 받는 공간”…조합원 모두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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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고 학교 협동조합 정기총회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의 모습. 왼쪽에서 네 번째가 신동협 매점 매니저. 박인범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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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아이스크림이었다. 매점이 없던 경기 용인시 죽전동 현암고는 여름이면 학생들의 무단외출이 잦았다.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 살 것 같아요” 하며 학생들은 슈퍼로 달려갔다. 마침내, ‘매점 설치’를 공약한 후보가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이번엔 학교의 고민이 시작됐다. 매점을 설치하자니 업자 선정 등 입점 절차가 복잡했다. 건강에 해롭고 싸구려인 물건만 갖다 팔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학교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선종섭 교장이 평소 공동체 교육 관련 활동에 열심이던 박인범 교사에게 제안했다. 용인시교육지원청과 용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도 지원 의사를 드러냈다. 박인범 교사가 총괄책임을 맡고, 학교 운영에 목소리를 내길 원했던 학생들과 학부모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학교협동조합 ‘두레바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조합원들은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설립 절차 등 실무적인 내용뿐 아니라 협동하는 공동체 경제를 공부했다. 단순한 매점을 넘어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가 참여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는 데 뜻이 모아졌다. 처음 학교협동조합 얘기가 나온 것이 2016년 초였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그해 10월17일 매점이 문을 열었다. 북카페와 소공연장도 함께 만들어 진로교육, 학부모와 함께하는 각종 강연, 체험활동 등을 할 수 있게 꾸몄다. 매점에서 팔 상품의 종류와 가격, 매점에서 하는 행사 등 모든 것을 조합원들이 함께 결정했다.

“협동조합에서 사람을 배웠다”

박인범 교사는 현암고 학교협동조합 설립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수기로 아이쿱소비자사업연합회,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한겨레신문사가 최근 공동주최한 제10회 윤리적 소비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윤리적 소비 진심상’을 수상했다. 협동의 경제를 밀고나간 박 교사의 진정성에 심사위원들도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박 교사가 쓴 수기의 제목은 ‘나는 협동조합에서 사람 인(人)을 배웠다’이다. 수기에는 ‘사람’을 설득하고, 배우고, 도움을 주고받는 일들이 촘촘히 적혀있다.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는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학생, 교사, 학부모의 협동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박인범 교사, 김선정 학생이사, 신동협 매점 매니저의 이야기를 전자우편 인터뷰로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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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윤리적 소비 공모전 시상식에서 박인범 선생님(오른쪽)과 김선정(현암고 3)양이 “윤리적 소비란 배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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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바우’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을 했나?

박인범 교사(이하 박) “교원 이사로 (조합) 설립 전반을 이끌었다. 전체적 틀을 짜고, 진행을 총괄했다. 평소 학교와 지역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해 협동조합 활동에 관심을 갖던 차에, 주변의 응원으로 시작하게 됐다.”

김선정 학생(이하 김) “학생회 임원 면접에서 떨어지고 학교의 주체가 될 일을 찾다가 시작했다. 지금은 학생 이사로, 교육분과장이다. 내·외부에 학교협동조합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일을 한다.”

신동협 매점 매니저(이하 신) “매점 매니저로 제품 구매와 판매, 공간 운영을 담당한다. 2학년인 아들 준섭이가 행복한 학교 생활을 보내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무엇에 중점을 두었나?

“자발적 참여와 협력, 민주적 의사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학생들로서는 이런 활동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게 중요하지만, 나는 학교협동조합이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조합은) 학교에 학생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그간 우리가 하는 참여는 주어진 안내장에 동그라미 쳐서 내는 것 밖에 없었지 않나? 의견을 내면 서로 도와주고, 받아들여주는 분위기가 있어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했다.”

“시작한 후엔 다른 분들과의 협력이 중요했지만, 처음엔 아들의 허락을 받는 것이(관건이)었다. 싫어하면 어떡할까 고민하며 물었더니 흔쾌히 좋다고 말해주었다.”

―협동조합 활동을 해도 ‘생활기록부(생기부) 기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는데.

“기록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활동의 목표일 수는 없고, 부수적 결과라는 것이다. 교사도 생기부 기록에 그칠 게 아니라 교육적이고 의미있는 활동을 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험을 녹여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오면 생기부에 등록해주는 방식으로 했다.”

“그런 원칙에 동의한다. 생기부를 무시할 순 없지만, 즐겁게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풍부해졌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면 결국 얻는 게 많다는 걸 배웠다.”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학교 행정 절차가 까다로웠다. 행정실 직원분들께 작은 과자를 사들고 자주 인사하러 가며 친해지니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참여했다 중간에 빠지는 친구들을 독려하는게 어려웠다. 실망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손으로 만든 매점을 보면 뿌듯하다.”

“물건 발주, 매출 관리, 쓰레기 처리 등 모든 것들에 다 시행착오가 있었다. 다른 조합원들이 나서 도와주셨다.”

―학교협동조합이 가지는 의미는.

“지식보다 살아가는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 중요한 시대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과 문제 해결 능력 향상에 학교협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내가 목소리를 내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어리다거나 황당한 소리라고 무시당하지 않고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행복이 성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다. 아들 행복을 위해 시작했지만, 나도 많은 것을 받고 있다. 생일날, 학생들이 갑자기 매점으로 몰려와 생일 축하 노래와 메시지를 주며 축하해주기도 하고, 감동스러운 일이 많다.”

세 사람이 보내온 글은 ‘감사장’에 가까웠다. 이런 문제는 어떤 분들 덕분에 해결했고, 이때는 누가 나서 주었다며 입을 모아 학교협동조합 설립 비결이 “협동”이라고 말한다. 수평적 의사소통도 이들은 강조했다. 학생, 학부모, 교사로 서로 처지는 다르지만 협동조합에서는 모두 같은 ‘조합원’이다.

올해 3월, 박인범 교사는 용인시 풍덕천동 수지고로 전근을 갔다. 올해 수능을 치른 김선정 학생 이사도 곧 현암고를 떠난다. 그렇지만 이들은 “걱정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이끌고 밀어주고 참여하며 협동의 실타래를 쫀쫀하게 엮어두었기 때문이다.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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