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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문화 현장] 음악으로 일깨운 건축의 역사성 / 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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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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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12월28일 저녁, 서울시향의 퇴근길 토크 콘서트가 ‘음악과 건축의 동행’을 주제로 2번째 공연을 이어간다. 주제가 주제니만큼 공간의 선정부터 고심을 거듭했었다. 여러 선택지 중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물망에 올랐을 때, 기획자들은 ‘서학에서 동학으로’란 의미를 절로 떠올렸다. 지난여름의 첫 공연이 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서학적 공간을 조명했다면,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동학의 역사성을 일깨울 만한 절호의 기회였다. 자연스레 연결되는 맥락과 동선이 반가웠다.

건축가는 천도교 대교당에 관한 두꺼운 문헌부터 샅샅이 파고들었다. 그러곤 감탄했던 대목을 전해주었다. 1918년 착공되어 삼일운동의 격랑을 치열히 관통했던 이 건물은 완공까지 여러 부침을 겪어야 했다. 건축비 중 상당 부분이 삼일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으로 전용된데다, 주축이 되었던 인재들이 대거 감옥에 수감되었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무려 15명이 천도교 교인이었으니 총독부의 박해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공을 향해 묵묵히 쌓아올렸던 그들의 저력이 건축가는 참으로 놀랍다 했다. 그뿐인가. 종로경찰서가 지척인 이 건물에서 사람들은 왜놈을 때려잡아야 속이 후련하다는 노래를 목청 높여 불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며 일제 패망을 기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부도덕과 불합리에 저항한 역사적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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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이 지난 7월 공연한 ‘음악과 건축의 동행’ 토크 콘서트.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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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항정신을 어떻게 음악으로 발현할 수 있을지, 열띤 논의가 오갔다. 동학농민 운동을 상징했던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후보군에 올리려는데, 시향의 실무자는 돌연 ‘김민기의 상록수’를 제안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만 머문 역사성이 아니라 그 후로도 끊임없이 진화한 저항정신을 상징하자는 취지였다. 작곡가의 허락을 맡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접촉했고, 곧 공익공연의 취지에 공감한 귀한 허락을 받았다. “거친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니,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는 이 노래의 메시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울림으로 공명할 예정이다.

한편 건축가는 높고 넓은 천장과 일정하게 반복되는 창문, 기하학적인 디테일 등에 주목했고, 음악가 입장에선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기존의 좁은 상단 무대를 과감히 포기하고 청중석으로 무대를 더 가까이 내려앉힌 것이다. 지난 공연에서 건축가는 객석의 배치를 물방울이 그린 동심원 모양으로 탈바꿈시켰다. 덕분에 단원들은 객석 사이사이로 넓게 퍼져나가 음향의 공간감을 배가시키는 동시, 청중들에게 깊숙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은 한층 더 진화된 양상이다. 객석이 품은 여러 가닥의 통로에 무용수 8명이 틈입해 생생한 공간감을 일깨우려 한다. 무용가 안은미가 특별히 동참하는 ‘라벨의 볼레로’는 유장한 크레셴도가 깃든 반복적 선율을 이어가며 절정을 향해 솟구칠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관통하는 이 3박 리듬은 건축이 구획한 공간적 리듬과 공감각적으로 조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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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건축가의 천도교 대교당 공연 객석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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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대교당의 건축양식은 빈 황금시대의 분리파와 잇닿아 있다. 작곡가 말러는 분리파와 의기투합해 음악과 건축, 회화가 한 공간에서 만나는 전시를 기획했었다. 화가 클림트는 전시실에 거대한 벽화(베토벤 프리즈)를 그렸고, 말러는 그 그림 아래서 베토벤을 연주했다. “모든 시대엔 그 시대의 고유한 예술이, 예술엔 예술만의 고유한 자유가 존재한다”는 그들의 철학을 담아, 이번 공연에선 말러의 피아노 4중주를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확장해 연주한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회복기 환자가 신께 드리는 감사의 찬가’로 선곡했다. 클림트의 장엄한 벽화를 대형 스크린에 띄우며 2017년을 보내는 송년 인사를 전하려 한다. 이렇듯 음악을 통해 살아나는 건축의 역사성과 공간감은 이 기획을 줄곧 관통한 주제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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