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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오철우의 과학의 숲] ‘15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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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오철우
미래팀 선임기자


요즘은 어쩌면 연결 과잉 사회다.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결해준다. 현대인은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 사회연결망이라는 사회적 자산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사람 만나기에 게으르지 않은 사회성은 사회생활의 미덕이다.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새로운 활력과 생각을 얻기도 한다.

어쩌다 경험하는 ‘혼밥’의 시간은 왠지 어색해 피하고만 싶다. 혼자 있어도 스마트폰 화면은 이내 나를 사회와 연결해준다. 고독은 빨리 벗어나야 하는 따분함 또는 시간 낭비 같다. 그래서일까? 최근 고독의 효용과 가치를 얘기하는 몇몇 심리학 연구 소식을 외신에서 보았을 땐 신선하다는 인상마저 받았다.

생각해보면 고독은 견뎌야 하는 외로움이며 보기 민망한 청승스러움 같기도 하여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요즘에야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혼자 사는 라이프스타일의 멋짐이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지만 여전히 고독은 견뎌야 하는 무엇이다. 여러 연구들은 지나치게 고독한 상태가 사유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몸의 건강에도 해로울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런데 고독 연구 소식을 접하고서 자료를 더 찾다 보니 고독이 그동안 일면적으로만 다뤄져왔다는 비판도 꽤 있었고, 고독을 그저 고독으로 보려는 심리학의 재발견 또는 재인식이 하나의 연구 주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초연결 사회로 나아가면서도 홀로 지내는 이들은 늘어나는 그 양면성을 마주할 때 비로소 고독은 재발견되고 있나 보다.

심리 연구자들은 고독 또는 홀로 지냄을 그 자체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수백명을 대상으로 고독이 감정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를 네 가지 실험 관찰을 통해 살펴보고 결과를 국제학술지 <성격과 개인 차이>에 발표했다. 실험에서 설정한 고독은 이렇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접촉하지 않으면서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 없이 혼자 의자에 15분 동안 앉아 있기.’

실험에선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열광이나 들뜸 같은 고양된 감정뿐 아니라 분노나 슬픔 같은 저기압의 감정이 줄어들고 평온과 스트레스 감소의 효과는 눈에 띄게 나타났다고 한다. 기존 연구들에선 고독한 상황에선 능동성, 강건함, 들뜸이 줄고 수동성, 허약함, 따분함이 커진다는 이분법적 측정이 주로 쓰이다 보니 평온이나 긴장완화 같은 효과는 측정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연구진은 주장한다.

그래도 고독의 효용을 얻으려면 적절한 조건은 꼭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무엇보다 실험에선 고독의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거리를 스스로 선택할 때 긍정 효과가 두드러졌다고 한다. 스스로 선택해 결정할 때 내적 동기가 강해져 결과도 좋을 수 있다는 심리학의 ‘자기결정이론’과 상통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홀로 지내는 경우도 비슷했다. 홀로 지내기는 흔히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에서 비롯하는 도피 또는 기피로 인식되지만, 그저 편해서 홀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런 자발적인 홀로 지냄은 오히려 긍정 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심리 연구도 있다. 버펄로대학 연구진은 같은 학술지에 낸 논문에서 홀로 지내는 290여명을 조사했더니 두려움 없이 그저 홀로 지내기를 즐기는 경우에는 창의성 같은 잠재적 이점이 나타났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어느덧 캐럴이 울려퍼지고 세밑으로 종종걸음 치는 연말이다. 평소 드물던 약속도 잦아진다. 송년의 만남은 세상살이와 추억의 이야기로 푸근하게 채워진다. 부산한 연말연시에 많은 사람을 만날 터이지만 짬을 내어 ‘나’도 만나고 싶다. 스마트폰을 끄고 사회에서 동떨어진 나의 시간을 보내는 능동적인 15분의 고독. 사실 이마저 쉽지는 않다.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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