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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특파원 칼럼] 포트 오소리티 버스터미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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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 요즘 뉴욕 맨해튼에 나갈 때면 자가 운전보다는 대중교통을 선호하게 됐다. 뉴욕 주변 베드타운인 뉴저지 버건 카운티 지역에서 맨해튼으로 이동하려면 극심한 정체와 '바가지' 주차요금을 감수해야만 한다.

다행히 기자가 사는 동네엔 맨해튼을 오가는 대중 버스 노선이 잘 갖춰져 있다. 오전 출근 시간대에는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링컨 터널까지 버스 전용차선 구간도 이용할 수 있어서 자가용보다 수월하게 맨해튼에 도착할 수 있다. 뉴욕의 대중교통 애호가로 전향하게 된 이유다.

외부에서 뉴욕 맨해튼으로 오가는 모든 공공 및 민간 버스들은 일단 모두 한곳에 모인다. 그곳이 바로 '포트 오소리티(Port Authority)' 버스 터미널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출근 시간에 사제 폭탄 테러로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바로 그곳이다.

오늘도 기자를 태운 '166T(급행) 버스'는 어김없이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 2층 승강장에 승객들을 내렸다. 터미널은 평소처럼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하루 23만명에 이르는 이용객도 줄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비는 한층 삼엄해졌고 건물 내에선 긴장감이 아직 팽팽하다. 이번 사건 발생 이전에도 건물 곳곳에 권총을 차고 방탄복을 입은 무장 군인들이 경비를 섰다. 지난 11일 이후부터는 폭파물 탐지견들이 통로마다 버티고 있다. 자동소총 등 개인 중화기들로 무장한 경찰 기동대 병력도 추가로 배치됐다.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에서 시내로 이동하려면 지하철이 가장 편리하다. 맨해튼 5번가에 위치한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많은 환승객 사이에 뒤섞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지하철로 연결되는 통로를 걸어갔다. 지난 월요일 오전 테러 용의자 울라가 자신의 몸에 부착한 파이프 폭탄을 터뜨리려 했던 지점이다. 평소 무심히 다녔던 통로에서 자칫 대형 테러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절로 사고 현장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점심때 만난 미국인에게 '포트 오소리티의 사고 현장 위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하자 그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사건"이라는 말로 화답했다. 이건 그저 개인의 반응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2일 자에 '다시 한 번 뉴욕의 운이 좋았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지난 14개월간 뉴욕에선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3명의 '외로운 늑대'들이 지하드(이슬람 성전) 시도를 했지만 '다행히' 대량 살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뿐이다.

이번 경우에도 울라의 몸에 부착된 파이프 폭탄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그나마 피해가 경미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의 범행을 사전에 막아내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건 발생 직후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 앞 차도에서 언론 브리핑을 했던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도 "용의자는 테러 조직에 연루돼 있지 않지만 인터넷에서 손쉽게 스스로 파이프 폭탄 제조법을 익힌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번 사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 많은 위험인물의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며 강력한 이민개혁법 입법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민 문호를 걸어 잠근다 해도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외로운 늑대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 테러 용의자 울라가 범행 직전 페이스북에 "트럼프, 당신은 당신의 나라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메시지를 올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포트 오소리티 터미널 테러 사건은 '일방적인 힘'만을 내세워선 미국이, 뉴욕이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일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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