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전직 목사 부부를 죽음으로 내몬 사이비 교주의 한마디 "용에 씌였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조선DB


지난달 경기도 가평군에서 발생한 노부부 사망·실종 사건과 관련해 노부부의 딸 이모(43)씨와 한 종교단체 교주 임모(여·63)씨가 구속기소됐다.

의정부지검 형사3부(부장 옥성대)는 이씨와 임씨를 각각 자살방조와 자살교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4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용에 씌였으니 하나님께 가야 한다”는 임씨의 말을 맹신한 노부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고, 딸은 부모를 사지로 인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2일 오후 3시쯤 가평군 상면 북한강변에서 남성 노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익사로 밝혀졌고 경찰은 신원을 파악해 딸 이씨에게 지난 15일 연락했다. 딸 이씨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노부모가 손을 잡고 함께 놀러 나갔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사건의 전말이 들어났다.

수사 당국 조사에 따르면 교주 임씨와 노부부의 딸 이씨는 노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아버지 이씨는 숨진 채 발견됐지만, 어머니 전모(77)씨는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아버지 이씨는 미국에서 30년간 살면서 목사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교주 임씨를 알게 됐다. 임씨는 자신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차도 마시고 대화하고 기도하는 종교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후 임씨를 맹신하게 된 노부부는 2014년 미국의 재산을 정리하고 귀국해 임씨를 따르는 교인과 딸 등과 함께 가평군의 한 마을에 방이 4개 있는 214.5㎡(65평) 규모의 집을 빌려 함께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임씨는 검찰 조사에서 자신은 "교주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임씨가 사실상 종교단체의 교주 또는 리더로 활동한 것으로 판단했다. 임씨는 평소 함께 사는 교인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라면서 "행동을 하기 전에 내 허락을 받아라" "신도들끼리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등 자신을 무조건 따르도록 요구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이씨 부부가 '하나님에게 가고 싶다. 도와달라'고 해 데려다주긴 했지만, 자살을 교사하지는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임씨가 자신을 따르는 이씨 부부에게 "용에 씌었으니 어서 회개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야 한다"고 세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여기에서 용은 악마, 사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고령인 이씨에게 "화장실을 오래 사용한다. 부부가 화장실에서 음란한 짓을 해서 용에 씌인 것이다. 마음이 순수해져야 한다"며 유아용 만화영화 '뽀로로'를 계속 보도록 지시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교주 임씨는 몇 년 전에도 국내에서 사이비 종교를 운영한 혐의(사기)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교인들에게 재산을 정리하라고 한 뒤 돈을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용에 씌였다"는 임씨의 주장에 딸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딸 이씨는 당초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실종 사건에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했지만, CC(폐쇄회로)TV에 노부모를 차에 태우는 모습이 찍혀 범행이 탄로 났다.

딸 이씨는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들통날까 봐 그랬다"면서 “평소 부모님이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으로 보내달라고 말해서 뜻에 따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초 경찰에선 유기와 자살방조 등 혐의로 딸 이씨와 임씨를 송치했지만 아버지 이씨 부부를 진료했던 의사 등을 통해 이들이 고령이긴 해도 거동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돼 유기 혐의는 제외했다"고 밝혔다.

[이정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