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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0억 들였는데… 대답없는 너, 서울 택시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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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빈택시 6~7대 있어도 승객 1:1 호출에 응답 안해

市 "승차 거부땐 처벌" 방침에 기사들 아예 앱 가입 꺼려

택시조합도 공동대응 나서

서울시가 지난 4일 승객이 표시하는 목적지가 기사에게 보이지 않아 택시 승차 거부를 줄일 수 있다며 내놓은 택시 호출 앱 '지브로'(Gbro)가 택시 기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앱 가입 자체를 피하거나 승객의 1:1 호출에도 응답하지 않는 등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지브로 가입을 자제해 달라"며 기사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개발과 시스템 구축 등에 약 10억원이 들어간 앱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변에 빈 차 6~7대인데도 '호출 실패'

서울시는 지브로를 쓰면 승객이 주변의 빈 차를 조회해 1:1로 호출하는 방식으로 승차 거부를 줄일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앱에서 주변 빈 차가 여러 대 확인되는데도 승차 거부는 여전했다. 지난 12일 오후 9시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주변 1㎞ 내의 빈 차를 조회하자 지도상에 택시 6~7대가 보였다. 20분간 호출 버튼을 10번 눌렀으나 단 한 대도 수락하지 않았다. 호출 도중 옆으로 빈 차가 2~3대 지나가기도 했다.

승객이 빈 차를 선택해 호출할 수 있어 승차 거부를 막는다던 '지정 호출' 기능도 마찬가지였다. 콜비 1000원을 걸고 빈 차 중 한 대를 지정해 불러봤으나 30초 뒤 '요청한 택시가 호출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떴다. 가까이에 있는 다른 택시 3대에도 잇따라 요청했지만 모두 응답하지 않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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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로의 콜 수락률이 이처럼 낮은 것은 택시 기사 대부분이 여전히 카카오택시 앱을 쓰기 때문이다. 카카오택시의 시장점유율은 90% 이상으로 추정된다.

택시 기사 임모(52)씨는 "승객의 목적지를 보고 고를 수 있는 카카오택시를 두고 지브로를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기사 박건수(62)씨는 "앱을 설치한 지 1주일 됐지만 하루에 지브로를 통해 태우는 손님은 2~3명"이라며 "지브로가 카카오택시를 따라잡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택시조합도 "가입 자제해 달라"

서울시는 지브로의 장점으로 택시의 카드 단말기에 자동 설치된다는 점도 들었다. 모든 택시 기사가 지브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단말기에 앱이 깔려 있더라도 실제 앱 가입 여부는 기사의 선택이다. 상당수는 단말기만 바꾸고 앱 가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브로를 사용하는 한 택시 기사는 "이용 약관에 '동의하지 않음'을 눌러서 가입을 피하는 기사들이 많다"면서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콜비 1000원을 더 준다고 갈 리가 있냐"고 했다.

시가 내놓은 '과태료나 자격정지 등 승차 거부 처분' 방침은 아예 앱 가입을 꺼리게 했다. 서울개인택시조합은 앱 출시 직후 택시 기사들에게 '가입을 자제해 달라'는 단체 문자를 보냈다. '서울시와 관련 내용을 협의 중이니 해결될 때까지 가입을 미뤄 달라'는 내용이었다. 조합 관계자는 "사전에 택시 기사들과 협의 없이 앱을 내놓고 호출을 거부하면 처벌까지 하려 한다"면서 "이번 주에 개인 조합·법인 조합·노조 회의를 열고 대처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택시 기사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며 "앱 운영은 시가 아니라 교통 결제 시스템 업체인 한국스마트카드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고 책임을 미뤘다. 서울시는 한국스마트카드의 지분 38%를 보유한 대주주다.

시가 충분한 검토 없이 내놓은 택시 승차 거부 대책은 지브로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 서울시는 종각역에 '해피존'을 운영해 정해진 구역에서만 줄을 서서 택시를 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승객을 태우는 택시에 3000원씩 인센티브를 줬는데도 택시 유입이 예상보다 적었다. 승객도 추위에 줄 서서 기다리기보다 골목에서 카카오택시를 부르는 등 부작용이 컸다. 서울시가 해피존을 포기하고 대신 내놓은 것이 지브로다.

지브로 출시에는 앱 개발 비용과 시스템 구축비 등 약 10억원이 들었다. 지금까지 단말기 설치 대수는 1만6000대이나 실제 앱에 가입한 대수는 훨씬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는 이달 말까지 3만대, 내년 3월까지 서울 시내 택시 7만대 전체에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스마트카드 관계자는 "내년 3월까지 시범 운영 중이기 때문에 콜 수락률, 만족도를 분석해 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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