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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이보그 곤충 상용화 머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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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이보그(cyborg·동물과 기계의 결합체) 곤충이 개발됐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소프트 로보틱스'에 몸길이가 2㎝에 불과한 곤충인 거저리에 전선과 전기 발생 장치를 결합해 이동 방향을 원하는 대로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이보그 곤충은 원리가 간단한 데다 크기도 작아 머지않아 재난 현장에서 작은 틈새로 들어가 조난자를 탐색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딱정벌레나 나방 등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동작을 정확하게 제어하기가 어려워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더듬이에 전류 흘려 방향 조종

히로타카 사토 난양공대 교수 연구진은 거저리의 더듬이에 은제(銀製) 전선을 연결했다. 전선은 거저리의 등에 붙인 전기 발생 장치로 이어졌다. 전기는 내장 배터리에서 나온다. 연구진은 곤충의 위험 회피 본능을 이용했다. 곤충은 더듬이에 장애물이 닿으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연구진이 사이보그 거저리를 왼쪽으로 움직이고 싶을 때는 오른쪽 더듬이에 전류를 흘렸다. 반대로 왼쪽 더듬이가 전기 자극을 받으면 거저리가 오른쪽으로 돌았다. 더듬이 양쪽에 전류가 흐르면 뒤로 물러섰다.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몸과 기계를 결합한 사이보그로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특히 초소형 로봇으로 사이보그 곤충이 주목받고 있다. 초소형 기계장치를 개발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보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작은 몸집에 최적화된 곤충을 사이보그로 만드는 편이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조선비즈


난양공대 연구진은 5년 이내에 건물이 무너졌거나 산사태가 난 곳에서 사이보그 거저리 수백 마리가 흙이나 돌 틈으로 들어가 조난자를 탐색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를 위해 거저리의 등에 이산화탄소나 체온을 감지하는 센서와 위치 신호 장치를 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앞서 연구에서 일반 곤충보다 인위적인 자극을 받는 사이보그 곤충이 더 넓은 지역을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나 탐색 임무에 안성맞춤임이 재확인됐다.

바퀴벌레·잠자리 사이보그도 등장

사이보그 곤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곤충에 기계장치를 결합했다. 처음에는 기계장치를 작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해 박각시나방이나 꽃무지 같이 덩치가 큰 곤충을 주로 이용했다.

히로타카 교수도 미국 UC버클리대 연구진과 딱정벌레인 꽃무지가 땅을 기거나 하늘을 날 때 근육에 전기 자극을 줘 방향을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근육 자극 방식은 정밀도가 떨어졌다. 전류를 흘리면 주변 근육까지 함께 자극을 받기 쉬운 탓이다. 난양공대 연구진은 더듬이 자극 방식은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도 방향 조종을 할 수 있어 상용화에 더 유리하다고 밝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의 알퍼 보즈쿠르트 교수도 바퀴벌레의 더듬이에 전기 자극을 줘 방향을 조종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좁은 틈도 잘 통과하는 바퀴벌레의 능력을 탐색 작업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개발 단체인 드레이퍼연구소는 사이보그 잠자리를 개발했다. 이번에는 근육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전기도 쓰지 않았다. 대신 잠자리의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이 빛 신호를 받으면 작동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이른바 '광유전학(光遺傳學, optogenetics)' 기술이다. 지난 3월 1차 비행 시험에 성공했다. 드레이퍼연구소의 제시 휠러 박사는 "전류를 흘리면 주변 신경들도 자극을 받지만 빛을 이용하면 특정 신경만 골라 작동시킬 수 있다"며 "2년 내 실제 위험 지역에서 정찰 임무를 시험하겠다"고 밝혔다.

환경 감시, 폭발물 탐지도 가능

사이보그 곤충은 원서식지에서 생태계 변화를 조사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후각이 뛰어난 꿀벌을 이용해 폭발물을 탐지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곤충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생체 물질로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 연료전지를 개발해 배터리의 시간 한계를 극복하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일부에서는 사이보그 곤충을 두고 동물 학대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실험동물 윤리 가이드라인에서 곤충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며 "그럼에도 사이보그 실험에서 곤충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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